푸른 옷

                                                                              - 김지하 -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 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는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 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황토>(197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현실 참여적, 비판적

표현

     * 옥중 체험을 통한 자유에의 강한 열망을 드러냄.

     * 가정적 표현을 통해 현재에 부재하는 자유와 해방을 갈망함.

     * '푸른색'이 지닌 의미의 전이가 나타남.

                : 전반부 ----------------------------> 후반부

        (수의-구금과 압제의 이미지)          (하늘-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

     * 선동과 운동적 측면에서는 구체성과 행동성이 다소 결여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새, 물, 바람 →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

    * 여윈 알몸을 가둔 옷 → 죄수복, 구속과 억압의 상징

    *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 있다면 → 바다의 한때를 꿈꿀 수 있다면

    * 푸른 옷 → 수의(囚衣), 죄수들이 입는 옷, 푸른 빛은 바다를 연상시킴.

    *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 가슴에 단 수인 번호를 가리킴.

    * 네 → 억압되어 있는 모습

    * 아아, 죽어도 좋겠네 → 자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 강조

    *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 → 죽는 운명(죽음)

    * 캄캄한 밤 → 부정적 현실 인식, 독재 정권의 억압과 구속

    * 새벽 → 화자가 기다리는 순간, 자유의 그날

    * 기다리던 ~ 눈물들 → 자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순수하고 고귀한 갈망

    * 먹구름 → 독재 치하, 화자의 소망을 가로막는 존재

    * 새푸른 하늘 →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

    * 쏟아지는 햇살 →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

    * 그것이 생시라면 ~ 않는다면 →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간절함을 점층적으로 표현

 

제재 : 푸른 옷(수의)

화자 : 가정적 표현을 통하여 잠시라도 자신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죽어도 좋다')

                           소망하는 사람

주제자유와 해방에의 간절한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자유에 대한 소망

◆ 2연 : 억압과 구속의 현실

◆ 3연 : 자유에 대한 소망

◆ 4연 : 자유에 대한 소망

◆ 5연 : 밝고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희생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60 ~ 70년대 억압적이었던 정치 현실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담고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시인의 옥중 체험이 바탕이 되어 있으며, 진정한 자유의 세계의 성취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예감하는 암울한 심정이 드러나 있다.

화자는 우선 개인적 투옥의 상태에서 해방을 꿈꾼다. 즉 푸른 옷과 붉은 표지로 상징되는 압제의 상태에서 새, 물, 바람, 바다, 바다의 꿈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기원한다. 그렇게만 되면 죽어도 좋겠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의 기원이 지닌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소망의 영역에 갇혀 있다. 또한 금제의 표시로서 1, 2연에서는 푸른 옷이 3연에서는 붉은 표지가 나타나 시의 전반부를 형성한다.

시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개인적 소망의 형태가 집단적 소망의 모습으로 일반화됨으로써 이 시가 개인적 서정의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다. 그리고 전반부에서의 해방의 이미지가 새, 물, 바람 등의 다소 단순한 자연물에 비유되었다면 후반부에서도 대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자유와 해방과 광복을 기다리는 사람은 화자 개인이 아니라 '캄캄한 밤에 그토록 /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 기다리는 눈들'이거나 거기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이다. 또한 그 소망은 한 순간의 소망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것임을 노래한다.

이 시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푸른 색'이 지닌 의미의 전이이다. 전반부에서 푸른 색은 바다와 결부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의와 결부됨으로써 압제와 구금의 이미지로 드러나며, 후반부에서는 그것이 푸른 하늘의 이미지로 전이됨으로써 그 개인이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 즉 수의를 벗어 버리는 것에만 국한되는 소망이 아니라 전 민중이 푸른 하늘 아래서 햇살을 받는 궁극적 의미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시의 장점이자 김지하 시의 당대적이고 전체적인 한계와 결부되는 점이기도 한데, 그 한계란 다름아닌 상징성과 관련되어 있다. 즉 70년대 김지하 시인의 시는 그의 시가 지닌 선동적이고 투쟁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운동적 측면에서의 구체성을 결하고 있는데,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상징인 것이다. 상징은 나름대로는 문학적 미덕을 지닌 문학적 장치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운동적 측면에서의 문학이 요구하는 사실성이라는 잣대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장치임도 또한  사실이다. 물론 당대의 김지하가 내보인 이 상징성의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문학사 전체가 70년대 성취한 한계일 것이다. 이는 또한 당대를 관통한 정치 논리의 유례없는 폭압성의 반증이라 할 것이다.

1~2연 : 주체를 드러내지 않고 새, 물, 혹은 바람이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언뜻 그것은 화자 스스로의 소망, 즉 화자가 새, 물 혹은 바람이면 좋겠다는 진술로 시를 열고 있다. 여하튼 1연에서는 무언가가 새, 물 혹은 바람의 심상처럼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진술로 시를 열고 있다. 2연에는 화자의 상대인 청자가 드러나 있다. 그것은 '여윈 알몸을 가둔 옷' 즉 푸른 옷이다. 그 죄수복의 푸른 빛에서 연상되어 화자는 바다 혹은 한 순간만의 바다에 대한 꿈이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3연 : 시적 화자가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엔 푸른 옷으로 상징되는 영어(囹圄)의 압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대상이라 하겠다. 화자는, 그 표지가 없다면 죽어 사라져도 좋겠다고 노래한다.

4연 : 하나의 가정만으로 채워져 있는 연이다. 그 가정의 내용은 1~3연에서 진술한 화자의 소망이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그 표현이 '영롱한 나팔꽃'이나 '햇살'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화자의 소망 내용은 이처럼 동일한 내포가 다양한 외연의 형태로 변주되고 있지만, 4연에 이르러 그 주체는 복수로 확대되고 있다. 즉 캄캄한 밤에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들은 '눈들'이거나 '맑은 눈물들'로서 이는 화자의 소망이 화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겠다.

5연 :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푸른 하늘과 거기서 쏟아지던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이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생시에 일어난다면, 더군다나 지금이라면, 더더군다나 그 하늘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자기 한몸 죽어 없어져도 좋겠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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