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포

                                                                              -  이형기  -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2억 년 묵

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적막강산>(1963)-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서정적, 관념적, 심리적, 비극적

◆ 표현

* 정교한 언어구사를 통한 존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줌.

* 수미상관의 구조로 안정감을 획득함.

* 자연적 소재를 관념화하여 표현함.

*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체가 되어 시상을 전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대 → 청자, 인간

* 나 → 주체인 산.  의인화된 표현

* 칼자욱

   → 산의 한부분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폭포는 산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

      존재의 고통을 감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비극성을 느끼게 함.

* 질주하는 전율 →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추락(속도감)

* 단말마 →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벼랑의 직립 →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폭포

* 석탄기 → 고생대 중엽으로 이 시기 후반에 조산운동이 일어나 파충류가 출현하였음.

* 장수잠자리의 추락

   → 폭포의 낙하에서 연상된 이미지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

       2연의 상승적 이미지와 대조되는 하강의 이미지를 통해 비극성을 강조함.

*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 산 스스로가 품고 있는 폭포의 떨어짐을 자멸이라는 비극적 이미지로 표현함(역설적 표현).

* 복안 → 곤충같은 절지 동물의 눈처럼 작은 눈이 여러 개 모여서 된 눈

* 맹목의 눈보라

   → 바위에 부딪쳐 떨어지는 폭포의 무수한 물방울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

       아무런 목적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이미지를 표현함.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삶이 투영됨.

* 2억 년 묵은 칼자욱

   → 2억 년은 폭포의 형성 시기를 의미함.

       삶의 역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고통의 멍에

       폭포는 산에게 있어 오래된 상처이자 고통이다.(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

 

제재 : 폭포(존재의 고통과 비극성) → 자연적 소재이긴 하지만,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 형상물이다. 즉 시인은 폭포라는 일반적 자연 현상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실존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한 시인의 인식은 이 작품의 시어와 어조를 통해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시인은 떨어지고 부서지는 폭포의 모습에서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포착해 낸 것이다.

 

◆ 주제 :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고통과 비극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폭포의 형상 - 칼자욱이 난 산(삶의 치열성)

◆ 2연 : 폭포의 형성 - 벼랑(절벽)에 형성된 산

◆ 3연 : 폭포의 낙하(하강의 이미지)

◆ 4연 : 폭포의 자멸 - 폭포의 부딪침

◆ 5연 : 폭포에 대한 인식 - 오랜 칼자욱을 지닌 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대상으로 채택된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상은 단지 자연적인 소재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 형상물이다.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이 아닌 '산'이며, 오히려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 청자인 '그대'가 되고 있다. 벼랑을 가로 질러 내리친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멍에가 되며, 여기서 시인은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는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 '폭포'의 하강과 소멸의 이미지

'길게 내리친', '벼랑의 직립', '장수잠자리의 추락', '자멸',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 등의 시어들을 통해 이 시에서 주로 쓰인 이미지는 하강과 소멸의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 시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폭포는 하강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들에서 폭포의 하강은 의지, 용기, 절개, 지조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의 작가는 그것을 비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자연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결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 자연에 대한 인식의 독특성

자연은 우리 시에 있어서의 전통적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고전 작품 속에서의 자연은 인간에게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긍정적, 이상적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되는 대상이다. 그러나 자연이 자연 자체로의 아름다움만 묘사되고 있지 않음을 이 시를 통해 경험하게 된다. 이 시는 산과 폭포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 작가는 산의 절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의 존재를 칼자욱이라는 섬뜩한 고통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고통의 이미지는 '산' 자신이 주체가 됨으로써 구체화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자연 인식은 비극적이기조차하다. 이는 작가의 독특한 사물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폭포'의 운율 형성 방식

이 시는 운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근히 나타나는 내재적 운율을 지니고 있다. 각 연을 4행으로 배치하면서 1, 3, 5연의 '그대 아는가', '아는가'라는 동음 반복, '그대 아는가 ~을 아는가'의 통사 구조 반복을 통해 내재된 운율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한 시의 앞뒤에 유사한 내용을 배치한 수미상관의 구조 역시 운율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운율마저 규칙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3연에서처럼 도치를 통한 통사 구조의 반복에 변화를 줌으로써 다양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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