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장(罷場)

                                                                              -신경림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창작과 비평>18호. 1970-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향토적, 서정적, 비유적, 서사적

표현

*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 장터 → 농민들의 대화와 만남의 장

* 4음보 중심의 안정되고 투박한 리듬

* 적절한 서사적 제재의 선택

* 일상어와 비속어의 적절한 구사로 농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못난 놈들 → 서글픔이 내재된 친근감과 동료애의 표현

*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시적 화자의 농민에 대한 진한 애정과 서글픈 현실 인식

* 목로 → 선술집에 있는 길고 좁은 나무 의자

*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 농민들이 겪는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대유적으로 표현

* 서울이 그리워지나 → 이농에 대한 욕구라기보다는 농촌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탄식의 표현임.

* 섰다 → 화투장을 한 패에 두 장씩 나누어 하는 노름의 한 가지

* 8행 ~ 10행 → 울적하고 서글퍼진 마음을 달래보려 귀가를 뒤로 미루는 모습들

                        삶에 대한 절망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읽어볼 수 있는 부분

*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① 가난하고 소박한 농민들의 장바구니를 압축적으로 표현(삶의 애환)

    ② 장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과 애환을 한바탕 마음껏 토설하고자 장터를 찾는다는 화자의 생각을 담은 표현이기도 함.

* 절뚝이는 파장

    ① 농촌 현실의 불구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부분

    ② 실제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나타내면서, 삶의 무게와 중압감에 휘청거리는 모습을 동시에 담은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있음.

    ③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는 표현과 일맥상통

 

주제황폐화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살아가는 농민들의 애환과 시골 장터의 정취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농민들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애정과 친근감(이발소, 목로주점) → 애정

◆ 5 ~ 10행 : 농민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탄식(장터, 학교 마당) → 현실 비판

◆ 11~13행 : 파장 이후의 귀가길 묘사(집으로 돌아가는 길) → 현실 수용, 아픔을 감내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느 시골 장터에서 만난 농민들의 애환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진솔하고 토속적인 묘사로 압축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지니는 시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향토적인 정취를 서정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하나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야기의 전개상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일상적인 언어의 적절한 구사를 통하여 민요적 리듬의식을 느끼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런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시골의 장터는 항상 흥겹다. 그리고 이 장터는 농민들의 토론의 장이자 정보의 교환처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둘러 앉거나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농사 짖기의 어려움이나 빚뿐인 농촌의 얘기에는 모두 서울로 뜨고 싶은 마음만이 앞선다. 이런 울적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파장 무렵의 장에서 이것 저것 집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달이 환한 마찻길로 접어들어서 무거운 발걸음 다시 집으로 향하게 된다.

초라한 시골 장터의 사실적 묘사를 통하여 농촌 생활의 어려움과 이로 인하여 날로 증가하는 이농의 문제를 간명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 1960~70년대 농촌의 현실

1960~70년대는 우리나라에서 근대화가 가속화된 시기로, 근대화와 산업화는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도시가 급격하게 확장되고, 여기저기에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값싼 노동력의 공급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값싼 노동력의 공급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값싼 노동력의 공급은 당시 피폐해진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로부터 채워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농촌은 급속도로 황폐화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 시인과의 인터뷰 : '문화저널 21'

(질문) : 많은 사람들이 시 '파장'의 첫 줄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에 무릎을 치며 매료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구는 어떻게 얻어진 것이었습니까?

(답변) : 실제로 그런 것을 느꼈고, 모델도 있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시골에서 노는 총각 건달들이 많았어요. 워낙 취직이 안 됐으니까. 그날도 친구들과 술추렴을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앞서 걷는 두 사람을 배경으로 맥반석만 한 달이 떠오르는 거예요. 마치 그 사람들이 달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들이 달에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광경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모르는 사람들인데 내가 가서 꽉 붙잡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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