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도

                                                                              -  김현승  -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잇발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 - 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

    성(性)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일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 떨기를 7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견고한 고독>(1968)-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문명비판적, 격정적, 예찬적

◆ 표현 : 동일한 형태의 연 반복

              강렬하고 선명한 시어의 선택

              작품의 어조와 수사가 매우 격렬함 (아! ∼ 감탄적 의문형)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각연의 1행 → 작품의 통일성 획득

    * 술 위의 술 → 파도의 모습(1)

    * 흰 거품 → 물거품

    *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 바다의 출렁임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의 일부

             메마른 세계에 대립되는 생명의 모습을 보이기 위한 표현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가득찬 모습

    * 영원히 잠들지 않는 가슴 → 파도의 모습(2)

    * 성보다 깨끗한 짐승, 기쁨에 사나운 짐승 → 파도의 모습(3)

                                                                      문명에 더럽혀지지 않은 원시적 삶의 아름다움

    * 저무는 도시, 병든 땅 → 메마른 문명의 세계

                                         바다(창조적 생명력의 상징)와 대립되는 세계

    * 라일락의 꽃향기 → 파도의 모습(4)

 

주제 : 파도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생명력

◆ 소재정리

    ♠ 술 : 냉철한 지적 정신과 대립적인 도취의 성질

    ♠ 가슴 : 감성과 정열의 근원

    ♠ 짐승, 꽃 : 인위적 문명의 세계와 대조

          ⇒ 바다 : '메마른 문명과 이지의 세계를 넘어선 삶'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술 위에 부은 술 - 생명의 힘찬 활력과 아름다움

◆ 2연 : 영원히 잠들지 않는 가슴 - 파도의 감성과 열정

◆ 3연 : 기쁨에 사나운 짐승 - 바다의 원시적 생명력

◆ 4연 : 라일락의 꽃떨기 - 문명에 더럽혀지지 않은 원시적 아름다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한국 현대시 400선> -양승국 저-

김현승의 시가 갖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관념적인 시적 대상까지도 뚜렷한 이미지로 포착하여 명징하게 드러내는 뛰어난 형상력이다. 이는 사물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적 관념을 날카롭게 추출해 내는 감성적 능력과 상통하는 것으로, 그의 뛰어난 직관적 투시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모더니스트적 면모를 가지고 있는 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는 병약한 문명과 결별하고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새로운 충동에 대한 추구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표현면에서부터 그와 같은 특징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시가 전해 주는 감각은 매우 신선한 것으로 몇 개의 형상을 떠올려 준다. 1연에서는 파도를 술 위에 부은 술에, 파도의 흰 거품을 술의 거품에, 출렁이는 바다를 춤추는 땅 또는 술을 담은 잔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는 바다를 가슴에 비유하고 있으며, 가슴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뱀의 잔등처럼 꿈틀거리는 해면(海面)에, 언어를 출렁이는 선박에 비유하고 있다. 3연에서는 병약한 도시 문명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책인 듯 수평선을 그어 놓은 파도를 원시적 성욕만큼 순수하고 생명력 넘치는 짐승에 비유하고 있다. 4연에서는 죽음을 표상하는 깊은 물이랑들과 이웃하며 솟아오르는 파도의 물거품을 라이락 꽃에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각 연들의 중심 이미지인 '술'·'가슴'·'짐승'·'꽃' 등은 하나의 논리 속에 통합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맨처음 제시되어 있는 '술'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술은 머리, 즉 이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즉 감성적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과 '가슴'은 술에 의해서 유발되는 감정의 흥분으로 그 연관성이 맺어지게 된다. '짐승'은 '기쁨에 사나운 짐승', 즉 광분적인 상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술에 의해 유발된 감정의 흥분이 빚어 낸 충동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꽃'은 그러한 충동이 유발하는 새로운 세계, 즉 순수한 원시적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술'·'가슴'·'짐승'의 상호 연쇄적인 작용에 의해 '꽃'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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