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초

                                                                              -김동명-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 <월광>(1936)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우의적, 의지적, 전원적

표현 : 화자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파초를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함. 감정이입.

             상징적 시어의 사용(밤, 겨울 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조국을 언제 떠났노 /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 열대식물인 파초가 낯선 곳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조국을 잃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화자

                       자신의 처지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병상련의 대상으로 표현함.

    * 샘물 → 영혼의 메마름을 채워주는 정신적 생명수

    * 발등 → 뿌리 위

    * 치맛자락 → 파초의 넓은 잎

    * 밤, 겨울 → 시대적 상황을 상징하는 말

 

제재 : 파초

주제잃어 버린 조국에 대한 향수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파초의 가련한 꿈(1연)

◆ 2연 : 파초의 외로운 넋(2연)

◆ 3연 : 화자의 파초에 대한 정성(3연)

◆ 4연 : 서로 의지하고 함께 지내도록 함(4연)

◆ 5연 : 파초의 잎사귀로 냉혹한 현실을 가리고 싶음(5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김동명의 제2시집 '파초'의 표제가 된 서정시로 감정 이입과 의인화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조국을 잃은 사람으로서 맛보는 서글픔을 같은 처지에 있는 파초에 의탁하여 쓴 작품이라 할 것이다. 곧, 고향인 남국(南國)을 떠난 파초의 처지와 조국을 잃고 비애의 삶을 영위하는 시인의 처지는 자연스레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바탕이 될 터이다. 제1,2연에서는 같은 처지의 파초의 발견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 제3연부터 마지막 연까지는 파초를 자신의 분신처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 시는 원산지를 떠나와 이국(異國) 땅에서 자라나는 파초를 통해 망국(亡國)의 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파초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나는 관상용 다년생 식물로 이 시에서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물로 쓰이고 있다. 시인은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추운 이 곳에서 가련하게 살아가는 파초의 운명을, 자유를 잃고 조국을 떠나 살면서 항상 조국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처지와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조국을 떠난 파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살아야 하는 파초의 '가련한' 처지에서 화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파초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2연에서는 이국 땅에서 남국을 향해 향수를 불태우는 파초를 '너'라고 의인화시켜 그의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파초의 모습을 '소나기를 그리는 정열의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화자는 그런 파초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샘물을 길어 그의 발등에 붓는다. 그리고 4연에서는 밤이 깊어 날씨가 차가워질 것을 걱정한 화자가 파초를 자신의 방에 들여놓겠다고 한다. 마지막 5연에서는 화자가 즐거이 파초의 '종'이 되어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파초와 화자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일체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편, 4연의 '밤'과 5연의 '겨울'은 모두 화자와 파초가 겪는 시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련을 함께 나누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일체감이 된 그들은 결국 '너'와 '나'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 운명체임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치맛자락'으로 서로를 '가리워' 주고, 암담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다시 말해, 파초에게서 느꼈던 동정심이 상호 교감(相互交感)의 과정을 거쳐 애정으로 심화됨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일체화된 것이다. 여기서 '치맛자락'이란 파초의 넓은 잎사귀를 뜻할 뿐 아니라, 성숙한 여인의 애정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제의 모진 탄압을 상징하는 우리의 '겨울'을 막아 주는 보호막이자 도피처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조국 광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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