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 이성부 -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지 혼자 무력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

    어디 한 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알겠느냐.

     

    오가는 발길들 여기 멈추어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

    저 혼자서 찾는 길이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엄동설한 칼별은 알고 있나니.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그 가슴 울림 들었느냐.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보았느냐.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우리 고향 좋은 물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을 알겠느냐.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을 알겠느냐.

     

 

 

 

    아 지금 감춰 둔 누룩 뜨나니

    냄새 퍼지나니.

     

       -<창작과 비평>(197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의지적, 격정적, 민중적, 우의적

표현 : 상징적이고 역설적인 표현

              강인하고 격정적인 어조

              누룩을 의인화하여 민중들의 의지를 노래함.

              끊임없는 물음 형식으로 독자의 깨달음을 유도하고 주제의식를 부각시킴.

              민중의 염원의 성취 과정을 누룩의 발효 과정에 비유하여 표현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누룩 한 덩이 → 술의 발효제, 역사 속 민중의 상징

    * 저 혼자 무력함에 → 누룩이 혼자일 때는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임.

    * 어디 한 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 → 역사의 관심 밖에 놓여 있다가

    * 알맞은 바람 → 누룩이 무력감과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의미 있는 타인이나 환경

                            ('바람'은 온도, 습도 등과 함께 누룩의 발효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

    * 살며시 더운 가슴 → 민중들의 열정 내지는 연대의식

    * 오가는 발길들 → 민중

    * 여기 → 부정적인 역사의 현장

    * 밤새도록 우는 울음 → 민중들이 핍박과 고난의 현실을 살아나가면서 흘리는 눈물

    * 저 혼자서 찾는 길이 /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 개인의 소망이 모든 민중의 소망임.(사회민주화의 길)

    * 엄동설한 → 독재치하의 현실

    * 칼별 → 혹한 속의 별, 어두운 현실을 밝히는 시대적 양심, 민중들 가슴에 살아있는 희망

    *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 탄압과 시련에도 희망의 꽃을 피우는 가슴, 누룩의 희생]

    *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 밝은 역사를 기대하는 희생

    *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 누룩이 곡식과 섞여서 술이 되는 과정(누룩의 발효 : 희생)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해 민중들이 고통을 참아내고 희생하는 모습을 형상화함.

    * 좋은 물 →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존재

    * 끓는 마음 → 희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민중의 뜻

    * 춤도 되고 ~ 죽음을 알겠느냐.

           → 자신은 비록 죽지만 그 죽음이 공동체의 춤과 기쁨을 가져온다고 역설적인 깨달음을 알려줌.

               춤, 기쁨, 해 솟는 얼굴은 모두 희생을 통해 이룩한 가치를 뜻함.

    * 아 지금 ~ 냄새 퍼지나니

           → 시적 화자의 격정적인 어조가 수그러드는 것은, 그간의 절망에서 희망이 발견되었음을 의미함.

               민중 의지의 확산을 나타내며, 앞으로 변화될 상황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표현임.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된 사회, 긍정적 역사가 펼쳐질 것임을 암시함.(낙관적 역사 의식)

 

제재 : 누룩('민중'의 상징)

화자 : 역사를 위해 자신을 헌신할 줄 아는 민중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내고 있음

주제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역설, 민중의 희생과 현실 극복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누룩의 더운 가슴(민중의 사랑에 대한 인식)

◆ 2연 : 누룩의 강인한 의지와  속깊은 기다림

◆ 3연 : 밝은 역사를 기대하는 민중의 희생

◆ 4연 : 누룩의 의연한 희생정신(역사를 위한 민중의 기꺼운 희생)

◆ 5연 : 긍정적 역사가 펼쳐질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발효제인 누룩을 의인화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역사를 진전시키는 민중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다음, 이에 대한 해답을 누룩의 속성에서 찾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나 '알맞은 바람'을 만나면 사랑을 내보이는 누룩은 고통과 핍박을 이겨 내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와 민중의 힘에 대한 시인의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누룩은 곡류에 곰팡이를 번식시켜 술을 빚는 원료로 쓰는 것이다. 따라서 누룩이라는 어휘가 갖는 의미는 늘 술과 관련되었다. 좋은 누룩은 향기 좋은 술을 가져오고 술은 인류와 함께, 특히 예술과 함께 했다. 고려 가전체 문학에도 누룩과 술이 등장한다.

시인은 색다른 시각에서 누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시인의 눈인 것이다. 시적 화자는 자못 엄숙하고 교훈적인 어조로 누룩의 의미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누룩이라는 사물을 통해서 술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1연에서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 누룩이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타인과 같은 '알맞은 바람'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야 따뜻한 가슴과 사랑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혼자일 때에는 무력한 존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연에서는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들의 아픈 '울음'을 들었는지를 묻고 있다. 그것은 희생하는 누룩처럼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이다. 그런 의미를 아느냐고 화자는 다그치고 있다. 이런 희생의 이미지는 썩으며 기다리는 일이라고 3연에서 되풀이된다. 이런 희생 ― 누룩이 곡식과 섞여서 술이 되는 과정 ―을 거치면, 자신은 비록 죽지만 공동체의 춤과 기쁨을 가져온다는 역설적 깨달음을 알려준다. 4연까지 시적 화자는 한결같이 의문형의 문장으로 청자들이 깨닫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선지자의 자세요, 분노와 사랑의 자세이다. 그것은 곧 시인의 자세이기도 한 것이다.

초기의 작품에서 이성부 시인이 지닌 분노의 뿌리는 질곡의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정신이 있다. 왜곡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매한 사람들에게 누룩을 통해서 제대로 된 시각을 갖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격정적인 어조는 마지막 연에 오면 수그러진다. 그것은 그간의 절망에서 희망이 발견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드러내놓고 누룩을 띄울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에서 자기를 희생해서 희망을 찾으려는 누룩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정적이고 단순해 보이기도 한 이 마지막 연이 보여주는 것은 시인이 지닌 미래에 대한 희망의 확신이다.

'누룩'이라는 시어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자기 희생과 바람직한 공동체의 재건이다. '누룩'을 통해서 보여준 시인의 강렬한 꿈, 시인이 그렇게 꿈꾸는 세상은 왔을까? 고귀한 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은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할 때 늘 강조되는 덕목이다. 시인이 시를 쓰던 당시의 현실이 부조리하고 왜곡되어 있을 때 아름다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희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우리 문학에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이 나타나는 것은 일제 시대가 대표적이다. 윤동주의 <십자가>에 나타난 '십자가'의 이미지나 <간>에서 '프로메테우스'의 ㅇ미지가 바로 자기희생인 것이다. 또한 이육사의 <광야>에서도 자기 희생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성부 시인의 이전 작품인 <벼>는 그런 공동체 의식이 잘 드러난 시이다.

<벼>에서는 서로를 묶어서 튼튼해진 공동체의 힘을 이야기한다. <벼>가 공동체로서 힘을 하나로 결집했을 때 얻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면, <누룩>은 스스로를 결집시키기 위해 필요한 희생을 강조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부 시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벼>와 <누룩>은 일직선 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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