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지도

                                                                              - 윤동주 -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 버린 역사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3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연가적, 애상적, 산문적

표현

*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 창 밖과 방 안의 이미지가 연결됨.(창 밖의 눈 : 실제의 눈 ↔ 방 안의 눈 : 내면의 눈)

* 화자의 심리가 투영된 소재(눈, 발자국, 꽃)

* 청자(순이)를 설정하여 말을 건네는 방식

* 줄글 형식의 산문적 운율

* 의문형과 영탄형으로 고조된 정서(안타까움과 그리움)를 표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순이가 ~ 지도 우에 덮인다. → 시적 대상이 떠나야 하는 상황 제시, 배경과 슬픈 정서 제시

* 함박눈 → 기존의 이미지(기쁨, 환희, 포근함)와 대비되는 소재

* 지도 우에 덮인다. → 눈이 지도 위를 덮음으로써 찾아갈 수 없게 만듦.

* 지도 → 이 세상

*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 대상의 부재로 인한 외로운 상황

* 벽과 천장이 하얗다. → 슬픔의 정서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함.

* 잃어 버린 역사처럼 → 시적 대상(순이)의 실체를 '조국'으로 보기도 함.

*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 '어느'의 반복을 통한 운율감 형성

* 눈 → 장애물의 역할과 그리움의 정서를 나타내는 소재

 

화자 : 순이와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

주제순이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마음(이별의 안타까움과 간절한 사랑)

[시상의 흐름(짜임)]

◆ 순이가 떠난다는 ~ 덮인다. : 순이가 떠남으로 인해 생긴 화자의 막막한 심정

◆ 방 안에까지 ~ 따라갈 수도 없다. : 순이가 떠난 상황에 절망함.

◆ 눈이 녹으면 ~ 눈이 나리리라. : 순이와의 재회에 대한 기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윤동주의 온화한 내면과 유연한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이다. 이 시의 중심 모티프는 '순이'와의 이별이다. 이별의 아침, 마치 자신의 막막한 심정을 대변하듯이 함박눈이 내린다. 눈에서 꽃으로 꽃에서 다시 눈으로 변주되는 화자의 순결한 내면의 이미지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환기하며 사랑의 아름다움과 지속성을 일깨운다. 화자의 눈길은 순이의 발자국을 쫓아 눈이 내리는 지도를 더듬어 간다. 지도와 편지는 함께 연결되는데 편지 봉투에 어느 거리 → 어느 마을 → 어느 지붕 밑인지를 적어야 편지가 순이에게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지도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화자는 순이가 가는 곳을 모르므로 그녀에게 부칠 편지는 화자의 마음 속에만 남아 있게 된다. 결국 순이에게 일러 둘 말이 적힌 편지는 순이가 사는 지붕 밑으로 가지 못한다. 현실적을 순이를 찾아갈 방도를 찾지 못한 시적 화자는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 순이의 발자국을 쫓아간다.

 

■ 더 읽을 거리

1939년 3월 12일에 완성된 산문시로, 순이에 대한 그리움을 '눈', '발자국' , '꽃' 등의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감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순이'의 상징적 의미나 그 떠나는 이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말한다면, 훌훌히 떠나는 순이의 행위를 비유한 '잃어 버린 역사'를 단초로 하여 순이를 '조국'으로 해석하는 역사주의적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역시 시 전체의 이미지가 그것을 쉽게 수용하기는 어렵다.

한편, '잃어 버린 역사처럼 (순이가) 가다.'라는 표현은 윤동주 시인의 독특한 비유이다. 일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원관념이 추상적일 경우, 구체적인 매재(보조관념)를 빌어와 원관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 시인은 거꾸로 비유를 한다.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자화상)', '사랑처럼 슬픈 얼굴(소년)'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함박눈이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내린다.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는 창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마음속의 추상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는 순이가 떠난 후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으로, 다음에 이어지는 '벽과 천장이 하얗다.'와 '방 안에까지 내리는 눈'에서 하얀 색의 이미지를 '외로움'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이렇게 마음의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고, 마음 속에 순이가 떠나가는 길(지도)이 그려진다.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그 길이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덧 화자는 마음 속 순이의 조그만 발자국을 따라간다. 하지만 펑펑 쏟아지는 눈이 순이의 발자국을 덮어 버리고 만다.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그리움의 길을 그만 두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발자국 자리마다 그리움의 꽃을 피워 일구고 그 꽃 사이로 순이를 따라 가겠노라 말한다. 맨 마지막의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의 '눈'은 내면의 그리움을 표상한다.

'창 밖'과 '창 안' 그리고 '창 밖에 오는 눈'과 '창 안(마음)에 오는 눈'의 대립 구조에 의해 안타까움의 정서가 고조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의 효과적 배치에 의해 펑펑 쏟아지는 그리움의 눈꽃이 독자의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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