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에

                                                                              -김용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시원산책>(196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서정적, 회상적

특성

① 회상적인 어조

② 현재와 과거가 적절히 배합됨.

③ 수미상관식 구성을 취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오누이들의 ~ 토실토실 익겠다. → 어느 화목한 가정에서 질화로를 사이에 두고 오누이 간에 정다운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것을 상상한 부분이다.

* 콩기름 불 ~ 피어나던 밤 → 콩기름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가늘고 기다란 실고추에 비유하여, 회상의 시간적 배경인 고요한 밤의 정경을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과 기대감이 나타나 있음.

*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 앞의 눈은 어린 시절 추억 속의 눈이고, 뒤의 눈은 현재 실제로 내리는 눈이다. 이 부분은 과거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 뒤의 눈은 결국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다.)

* 다만 이제 나 홀로 / 눈을 밟으며 간다.

   → 메마르고 삭막한 도시에 사는 화자의 모습

      할머니가 생존하시지 않는 현재에 느끼는 화자 자신의 외로움과,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남.

 

주제유년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눈 오는 밤 어느 시골 집 안방의 정겨운 모습을 상상한 것

◆ 2연 : 약간 어두운 조명이지만 정겨운 분위기

◆ 3~4연 : 할머니에 대한 추억

◆ 5연 : 지금은 옛날을 잃어 버리고 나 혼자 눈을 밟으며 간다.

◆ 6연 : 옛날의 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걷고 있다.

◆ 7~8연 : 지금도 시골 마을에는 그렇게 정겨운 풍경이  있으련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눈 오는 밤에 정겨웠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는 화자의 애잔한 마음을 한 편의 수채화같이 서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향토적 서정성이  어느 작품보다 뛰어나게 형상화되어 있는데, 이는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시어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 시는 수미상관의 형태를 보이며 '고향의 모습 상상 → 유년 시절 회상 → 화자의 현실 → 고향의 모습 상상'과 같은 과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 눈을 밟고 가던 화자가 누이와 함께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졸라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으로 향토적 서정성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질화로엔 / 밤알이 토실토실 익'어 가던 어린 시절의 정겨움도 모두 사라져 버린 메마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는 홀로 눈길을 걸으며 고독에 젖다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떠올리고는 흘러가 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미 어른이 되어 있지만 역시 그리운 것은 철없이 자라던 어린 시절이다. 눈이 오는 밤 오누이들이 정답게 얘기하는 어느 집에선 밤을 구워 먹으면서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다. 콩기름 불이 가는 실고추처럼 피어나던 밤이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눈동자가 초롱 같다고 하시던 할머니, 바깥에는 계속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린다. 이제는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걸어간다. 오버 자락에서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느끼면서 어린 시절 밟았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이 정답게 얘기하는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잘 익겠다. 눈 오는 밤의 추억이 아름답게 펼쳐졌으며,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배합되어 효과적인 표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첫 연과 끝 연은 반복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미쌍관의 수법으로 이 시의 정서적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질화로', '밤알', '콩기름 불', '실고추', '불씨', '잎담배', '초롱' 등의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시어를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든 한편, 옛것에 대한 아쉬움을 강조하는 이중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떠난 것은 모두 정겨운 것이고, 잃어 버린 것은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줌으로써 각박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포근한 옛 추억에 젖어들게 하여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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