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 고 은 -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시집 <피안 감성>(1960)-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명상적, 관념적, 상징적

표현 : '-노라'의 반복에 따른 엄숙하고 명상적인 어조와 분위기 연출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눈 → 이 시의 모티프이고 지배적 심상에 해당함.

           화자의 절망과 번민과 고뇌를 정화하여 무념무상의 경지를 만들게 함.

* 온 겨울을 떠돌고 와 → 지난날의 방황과 고뇌의 생활(겨울과도 같은 혹독한)을 의미함.

*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 눈 덮인 세상의 고요함과 정적감이 조용히 묵념하는 듯한 분위기임.

* 설레이는 평화 →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새로운 평화를 느끼는 심리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그 이전의 삶에는 평화가 없었음을 추측케 함.

*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 눈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집착을 버리고 정화된 나는 드디어 세계를 새로이 인식할 수 있게 됨.

* 어둠 → 혼돈과 방황과 갈등을 극복한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

              내면의 평화, 정적, 안정 절대적 평정, 무욕의 상태를 상징하는 시어

              지금까지의 내적인 고뇌를 극복하고 무욕의 상태에서 모든 것을 다시 인식하고자 하는 새로운 출발점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시어

*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 이전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게 되었다는 의미를 나타낸 구절

* 나의 마음이 밖에서는 '눈길' → 지나온 모든 고통과 갈등이 다 덮여서 평화로운 상태를 나타냄.

*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 정화된 외부 세계가 내면화되어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함.

 

제재 : 눈내리는 풍경

주제오랜 방황과 고뇌를 끝내고 다다른 깨달음의 경지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눈 덮인 길을 바라봄(방황 끝의 명상).

◆ 5 ∼ 9행 : 내면의 정화(평화의 세계에 도달한 느낌)

◆ 10∼15행 : 눈을 통한 명상(새로운 정신 세계의 열림)

◆ 16∼21행 : 정화된 내면(자아와 세계의 정서적 융화)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의 화자는 지금 눈 덮인 길을 바라보고 있다. 오랜 방황 끝에 돌아와 보니 눈은 지나간 모든 것을 덮어 버려 경이감에 넘치는 낯선 세상을 연출한다. 지난날의 고통과 상처도 눈에 덮이고 세상은 묵념을 하듯 평화로움에 잠겨 있다. 나는 이제 마음의 눈으로 이 정화된 세상을 바라보며 위대한 적막 속에서 우주의 내밀한 고백을 듣기도 한다.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는 말은 처음으로 이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 깨달음의 내용이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데, 그 핵심은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 안에서는 어둠이노라'이다. 나의 마음이 빛을 받아 밖으로 나타난 모습이 '눈길'이라면, 나의 마음이 아직 마음 속에 머물러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상태를 '어둠'이라고 한 것이다. '눈길'과 '어둠'이 동일시된 이 문장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할지 모른다. 눈과 어둠은 얼핏 상반된 이미지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어둠'은 글자 그대로의 무명(無明)이 아니라 혼돈과 갈등을 극복한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로 이해된다. 눈에 덮여 모든 것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었듯이 화자의 마음도 경이감에 넘쳐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어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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