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인본주의적, 전언적(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표현 : 독특한 소재의 활용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 2행 → 화자의 겸허한 태도

  * 무교동, 종로, 명동, 남산, 서울역, 남대문 시장

      → 평범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공간이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에 빠진 화자가 걸어가는 곳

  * 생각나고 있었다. → 현재진행형으로, 깨달음이 찾아온 그 순간의 특별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임.

  * 그런 사람들이 → 도치법이 사용되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함.

  * 알파 → 출발, 기초, 근거의 뜻으로 사용됨.

  

주제시와 시인의 본질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진정한 시의 모습이라는 인본주의적 예술관의 표명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시의 개념에 대한 나의 대답

◆ 3~14행 : 시인의 본질에 대한 나의 생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와 시인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시나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져 관념과 추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서민들의 건강한 생활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뒤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2행에서 화자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서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은 반어적인 표현이다. 이 말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빚어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다.

이 시의 진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유치하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이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냄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 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인에게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새삼스러우면서도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곧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의 지표가 무엇인지를 대답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화자는 자신은 시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겸손의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다. 무교동, 종로, 명동, 남산, 서울역, 남대문 시장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을 걸으면서 계속 이어진 상념의 끝에 문득 적절한 대답이 떠오른다. 고생스러운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착하고 인정 넘치게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시인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그 대답이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착하고 순정한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대답한 것은 분명 동문서답이다. 그러나 시인의 대답으로부터 우리는 충분히 답을 유추할 수가 있다. 착하고 순정하게 생활을 영위하는 일상인들이 시인이라면, 그들의 삶 자체가 시가 아니겠는가. 일상인들과는 다른 선택받은 존재로서의 시인이라는 관념, 고급한 언어 예술의 정화가 시라는 관념 등과 결별하고, 시라는 예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무엇이 진정 훌륭한 시이며 바람직한 시인의 모습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 보헤미안 시인 김종삼

미학주의자 또는 순수 시인으로서의 위치가 밝혀져도 그의 전모 가운데 채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김종삼에게는 김현이 일찍이 통찰력을 가지고 '방랑'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것이 있다. 보헤미아니즘(부르주아 사회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며 사는 보헤미안들의 삶의 풍조)은 1950년대 몇몇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풍조였다.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김관식들로 이루어진 예술가 무리는 1960년대에 들어와 내면 의식을 탐구하는 그룹과 현실 참여를 하는 그룹이라는 두 벽에 부딪치게 된다. 김종삼이 한동안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여기서 찾아야 할는지 모른다. 소시민주의자들과 대시민주의자들 틈에 무시민주의자가 설 땅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희귀한 보헤미안 생존자인 것이다.

- 황동규, 「잔상의 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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