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 함주시초 2

                                                                              -백석-

                                                       

 

 

 

장진(長津) 땅이 지붕 넘어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 감주에 기장 찰떡이 흔한 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 등거리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 순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닷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 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었다.

 

산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하다.

 

 

 

 

                    -<함주시초>(193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토속적, 서사적

특성

① 토속적 시어로 향토적 정감을 드러냄.

② 의태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생생히 묘사함.

③ 색채어를 사용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함.

④ 비슷한 통사구조를 반복하여 리듬감을 형성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넘석하는 → 넘어다 보이는

* 막베 → 거친 삼베

* 등거리 → 등만 덮을 만하게 걸쳐 입는 속옷의 하나

* 잠방등에 → 가랑이가 무릎까지 오는 짧은 남자용 홑바지

* 약자 → 약으로 쓸 재료

* 하이얀 것 → 눈물

 

주제산골사람과 노루새끼에 대한 연민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장터에서 노루새끼를 닮은 산골사람

◆ 2연 : 산골사람을 닮은 노루새끼

◆ 3연 : 팔려 갈 처지에 놓인 노루새끼의 모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작가가 1937년 함경도 함주를 여행하고 쓴 연작시 '함주시초' 중의 한 편이다. 이 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산골 사람'과 '노루 새끼'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골 사람'은 자신의 밭에서 '당콩순'을 먹던 '노루 새끼'을 잡아다 팔려고 한다. '노루 새끼'는 약으로 쓸 사람에게 팔려갈 운명에 처해 있다. '노루 새끼'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자신을 팔려는 '산골 사람'의 손을 핥고 있다. 이것은 비극적 상황이다. 작가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한 채 그것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심지어 감정의 절제를 위해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시어나 시구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이를 다른 말로 대체하여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남행시초(1934~1935)' 연작시가 '길'을 모티프로 삼아 여행길의 상념들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면, 1년 7개월 간의 공백기 후 묶어 발표된 '함주시초(1937)'에는 세속적 공간에 대한 쓸쓸한 내면의 정서가 나타나 있다. '함주시초'는 사물이나 동물의 삶을 인간적인 삶과 동일한 차원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목을 빼고 보면 장진 땅이 보인다는 산골에서 장터를 구경하고 있다. 자구나무와 기장 감주, 기장 찰떡이 흔한 찰떡이 보다가, 문득 노루 새끼를 데리고 온 산골사람을 보게 된다. 화자는 털이 듬성듬성 벗겨진, 약재에 쓰려는 노루를 거리에서 흥정하는 모습을 연민어린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노루 새끼를 끌고 온 산골사람은 '막베 등거리와 막베 잠방등에'를 입고 있다. 이러한 외양을 통해 그가 풍요롭지 않은 인물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노루 새끼의 '다문다문 흰 점이 백이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있는 모습에도 산골 생활의 궁핍함이 묻어 있다. 이처럼 산골사람과 노루새끼는 외양과 생활의 궁핍함이 닮아 있다. 화자는 이를 담담히 바라보지만, 그 속에는 안타가움과 비극성이 짙게 배어 있다. 자신이 약으로 팔려 나가는 신세를 아는지 '새까만 눈에 하이얀' 눈물이 가랑가랑하는 노루 새끼의 천진성은 자신을 팔아넘기는 '산골사람의 손을 핥'는 행위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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