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에게

                                                                              - 김규동 -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아름드리로 자라

희멀건 하늘 떠받들고 있느냐.

8 · 15 때 소련 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네 그늘 밑에 누워

낮잠 달게 자던 나무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그래 맞아

너의 기억력은 백과사전이지.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산 목숨보다 죽은 목숨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

하나도 빼지 말고 들려 다오.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 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시집<느릅나무에게>(200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체험적, 회상적, 현실 반영적

표현 : '나무'에 대한 의인화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 해방 전까지 이북에 살았던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고려할 때, 6 · 25 전쟁으로 월남한 후 북에 있는 고향을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처지가 나타남.

* 느릅나무 → 고향을 상징하는 소재

*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남.

* 8 · 15 때 소련 병정 녀석이 따발총 안은 채 → 광복 후 소련이 점령한 38선 이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우리 민족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 → 격동의 근대사를 견뎌 낸 가족과 고향의 소식

* 어린 시절 동무들은 어찌 되었나 → 고향에 대한 그리움

* 산 목숨보다 ~ 빼지 말고 들려 다오. → 전쟁 후 고향에서 벌어졌을 것이라 짐작되는, 나아가 한반도에서 벌어졌을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한과 아픔을 환기하고 있다.

* 죽기 전에 못 가면 / 죽어서 날아가마 → 통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으로 인해 그리움이 더해짐.

* 옛날처럼 ~ 들려 다오. →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는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평화로운 이야기로 해석되어 통일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옛날처럼 /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 → 아픔과 한이 없는 날들

*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 → 평화로운 이야기

 

제재 : 느릅나무

화자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애타게 드러내고 있는 실향민

주제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 ~  7행 : 전쟁 이후 떠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

◆   8 ~ 16행 : 전쟁 이전과 이후에 벌어진 현대사의 사건과 그 시간을 견뎌 낸 사람들의 아픔

◆ 17  ~  끝 : 고향에서 평화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음 - 통일에 대한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6 · 25 전쟁으로 인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움에서 비롯된 전쟁 전후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이러한 현실이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고향을 오랫동안 지키고 서 있는 느릅나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전쟁으로 화자와 작별하게 된 느릅나무는 소련 병정을 자게 하고, 산 목숨보다 죽은 목숨 더 많을 세찬 세월 이야기를 알고 있어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화자가 느릅나무에게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 시집 <느릅나무에게> 발간과 관련하여

올해 팔순을 맞이한 원로시인 김규동(80) 선생이 새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 스스로 "83편은 나의 작은 군단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지난 14년 동안 써 온 300여 편의 시를 고르고 고른 끝에 남겨진 83편의 시가 보석처럼 빛을 내고 있다.

'어머니는 다 용서하신다', '육체로 들어간 진달래', '이북에 내리는 눈', '아, 통일', '봄이 오는 소리', '고향 가는 길', '해는 기울고', '오장환이네 집', '고무신', '해 뜨는 아침을 기다리며', '인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늘 꼭대기에 닿은 것은 깃대뿐이냐', '저승에서 온 어머님의 편지', '까마귀' 등이 그것이다.

김규동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그 중 한 편, 오직 한 편이라도 (살아)남는 것이 있다면 그 한 편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이상을 추구해볼까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이번 시집에 실린 시가 독자의 심판을 받아 거의 다 쓰러지더라도, 꼭 한 편의 시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시를 불씨로 삼아 다시 시를 쓰겠다는 그런 겸손의 뜻이다.

시인은 "착한 인간으로 살며 이상에 걸맞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모든 생각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여긴다. 왜? "인격과 품성의 잘못은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다른 한편 절반의 책임은 분단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의 분단이 한 시인의 아름다운 영혼을 철저하게 왜곡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통일이 없이는 인간 교육과 문화, 아름다운 사회의 건설은 지난한 과제"라고.  또한 그 때문에 시인이 그동안 쓴 시는 '현실 사회의 어둠과 모순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앞으로도 남북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시인은 결코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을 되짚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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