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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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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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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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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희망적 ◆ 표현 : 간절한 기다림과 희망의 어조 만남의 시간(미래)과 기다림의 시간(현재)을 모두 긍정함.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 만남의 공간 * 너 → 사랑하는 사람,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현재에는 부재하는 가치 있는 것(민주, 자유, 평화 등.)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의미와 음성의 이중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순수하고 절실한 기다림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나타냄. *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기다림의 소망과 상실감의 반복이 주는 고통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 애리다(표준말 : 아리다) → 혀끝을 톡톡 쏘는 것 같은 알알한 느낌이 있다. 상처를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다. *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 '너'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의 표현(기대, 초조, 절망감)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나의 마음이 너를 향해서 간다는 의미로,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보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행동임.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 역설적 표현임. 소망에 대한 기다림은 반드시 성취될 때에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와 절망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확인하게 된다는 역설적 의미가 드러남. * 아주 먼 데 → 공간적, 시간적 거리감의 표현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화자의 초조하고 절실한 기다림의 순환 행위
◆ 제재 : 기다림 ◆ 주제 :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는 기대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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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의 흐름(짜임)] ◆ 1~12행 : 너를 만나기로 한 곳에서 너를 기다림.(기대감, 초조감, 실망감) ◆ 13~22행 : 너에게 다가가며 너를 기다림.(적극적이고 희망적인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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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여기에서의 기다림은 김소월이 진달래꽃에서 노래한 바 있는 소위 한민족의 전통적이라고 하는 떠나간 님의 처분에 따르고 기다리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그것이 아니라, 기다리면서 온 마음이 '아주 먼 데서 너에게로 가는, 너를 기다리면서 너에게로 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것이다. 이 시의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너'이지만, 화자는 오히려 '너'에 대한 기다림을 설레는 기대감과 행복하고 충만한 심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만남의 시간이 될 미래와, 기다림의 시간인 현재에 대하여 다 같이 축복을 내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정작 '너'를 만나게 될 미래보다도 그 미래를 기다리는 현재를 더 축복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라는 시간은 화자에게 있어서 '너'가 멀고 먼 곳에서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시간이며, 또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라는 마지막 행에 나타나듯이,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화자가 '너'와 더 가까워지는 축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황지우의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는 자신을 열애하는 이가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이 열애할 이가 없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월의 두께와 인연의 깊이를 느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몸으로 신경을 기울이는 그의 기다림은 그의 생명을 갉아 먹을 만큼 가슴 애리는 것이지만, 그는 기꺼이 그 기다림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그리고 이 시가 나에게 제일 감명 깊었던 이유는 시에 붙이는 말이 주는 구체성 때문인 것 같다. 기다림은 그의 삶을 녹슬게 하지만 새로운 태어남을 이야기하는 그는 아이에게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 희망을 열망한다.
시(詩)란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말(言)과 사원(寺)의 결합, 이는 결국 글로 사원을 세우면 그것이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의 분석이지만 시란 결국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여 다듬고 배열하여 시인 정신의 사원을 세우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뜻이 담긴 시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일은 한 시인이 여기 있다. 바로 황지우다. 그의 필명은 시집 편집 과정에서 '재우'를 타자기로 잘못 쳐서 '지우'가 되었다고 한다. 필명은 정말 우연히 정해졌지만 그의 시 쓰기는 치밀하다. "황지우,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과 섬세함", (발문) 홍정선, 『나는 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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