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

                                                                              -이용악-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자

조 들창에

봄빛 다사로이 헤여들게”

 

너는 불 꺼진 토기화로를 끼고 앉어

나는 네 잔등에 이마를 대고 앉어

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

식아

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

 

봄이 오기 전 할미 집으로 돌아가던

너는 병든 얼골에 힘써 웃음을 새겼으나

고동이 울고 바퀴 돌고 쥐었던 손을 놓고

서로 머리 숙인 채

눈과 눈이 마조칠 복된 틈은 다시 없었다.

 

일년이 지나 또 겨울이 왔다.

너는 내 곁에 있지 않다.

너는 세상 누구의 곁에도 있지 않다.

 

너의 눈도 귀도 밤나무 그늘에 길이 잠들고

애꿎은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기에

오늘도 등신처럼 턱을 받들고 앉어

나는 조 들창만 바라본다.

 

“봄이 아조 왔다고 생각자

너도 나도

푸른 하늘 알로 뛰어나가게.”

 

너는 어미 없이 자란 청년

나는 애비 없이 자란 가난한 사내

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

식아

 

 

 

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회고적, 애상적, 비극적

특성

① 시적 대상인 '식'의 삶과 죽음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② 통사 구조의 반복(1, 6연)으로 의미를 강조하고 운율을 형성함.

③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구성 : 1~3연(과거의 모습), 4~7연(현재의 상황)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겨울 → 불우한 환경, 일제 강점기

* 봄빛 → 밝은 미래(조국의 광복)를 의미하는 시어

* 너(식) → 죽은 친구, 연민의 대상

* 불 꺼진 토기 화로를 끼고 앉어 → 불우한 처지, 비극적인 삶의 모습

* 네 잔등에 이마를 대고 앉어 → 화자가 친구에게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

* 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 → 밝은 미래의 도래에 대한 확신

* 때로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 → 폐결핵을 앓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음.

* 병든 얼골 → '식'의 구체적인 상황

* 힘써 웃음을 새겼으나 → 배웅하는 화자를 안심시키려는 모습

* 서로 머리 숙인 채 → 헤어짐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 눈과 눈이 마조칠 복된 틈은 다시 없었다. → 화자와의 이별 후, 친구가 죽었음을 드러냄.

* 일년이 지나 또 겨울이 왔다. → 시간의 경과,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음.

* 너는 내 곁에 있지 않다 → 대상의 부재, 안타까움의 정서

* 너는 세상 누구의 곁에도 있지 않다 → '식'이 죽었기 때문에

* 기억의 실마리 → 친구와의 추억

* 오늘도 등신처럼 턱을 받들고 앉어 / 나는 조 들창만 바라본다.

   → 화자의 멍한 모습,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허탈감과 상실감

* 푸른 하늘 → '봄'과 동일한 시어

* 너는 어미 없이 ~ 가난한 사내 → 가족의 결손,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 조국을 잃은 민족의 모습

 

주제친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밝은 미래의 도래에 대한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봄의 도래에 대한 소망

◆ 2연 : 비극적 삶 속에서도 봄의 도래를 믿음.

◆ 3연 : 할머니의 집으로 떠난 친구 '식'

◆ 4연 : 친구 '식'의 죽음

◆ 5연 : 죽은 친구 '식'으로 인한 허탈감과 상실감

◆ 6연 : 봄의 도래에 대한 소망

◆ 7연 : 친구와의 동질감과 봄의 도래에 대한 믿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적 대상인 '식'이라는 친구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일제강점 하의 민중들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인 '나'가 청자인 '너(식-죽은 친구)'를 마치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구조로, 친구인 '너'를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너'는 당시 만연했던 폐결핵을 앓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친구와 화자는 소생의 봄, 밝은 미래를 기대했으나, 친구는 죽었고 화자는 허탈감과 상실감에 '등신처럼' '조 들창'을 바라보며 친구를 회상하고 있다. '어미 없이 자란 청년'인 '너'와 '애비 없이 자란 가난한 사내'인 '나'는 둘 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이러한 결손의 모습은 식민지 시대의 보편적인 개인적 · 사회적 정황이며 조국을 잃은 우리 민족의 모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봄이 아조 왔다고 생각자'는 화자의 말은 조국 광복에 대한 소망과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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