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 신동엽 -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진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터

    새 순 돋듯

 

 

 

    허구많은 자연 중(自然中)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창작과 비평>(197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의지적, 자기 희생적, 미래지향적

표현 : 유언의 형식, 희생양 모티프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으로 운율감과 화자의 의지 강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 돌아가는 날 → 화자가 죽는 날

    * 너 →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데, '사랑하는 사람', '죽음을 통해서라도 얻어 내야 할 이상과 희망',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민중' 등으로 이해됨.

    * 두고 가진 못할 / 차마 소중한 사람 → '차마'를 문장의 앞에 쓰지 않고 '매우'가 와야 할 자리에 씀으로써, 절제된 시어 구사와 '소중한'의 의미를 강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고 있다. (시적 허용)

    * 묵은 순터 / 새 순 돋듯 → 화자의 소중한 존재인 '너'가 새싹이 나는 것과 같이 새로운 세상에서 희망차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희망의 이미지),  묵은 순은 '화자(기성세대)'요, 새순은 '너(후세대)'라고도 할 수 있음.

    * 이 근처 → 새 순이 돋아나는 것과 같은 희망적인 세상

    *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 화자가 '이 근처'를 이상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희생적 다짐이 담긴 말이다.

             '이 근처'는 '너'를 위한 화자의 노력과 사랑이 배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재 : 너(소중한 이)

주제 :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은 소망과 의지

           '나'의 사후에도 이어지게 될 연인(혹은 후손)의 삶에 대한 배려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나는 죽더라도 너는 이곳에 와서 살라고 함.(너를 위한 나의 희생)

◆ 3~6행 : 나는 죽더라도 소중한 너는 이곳에 와서 살라고 함.(소중한 너)

◆ 7~10행 : 너에게 이 근처에서 희망을 이루며 살라고 함.(새로운 세상에서 '너'가 살기를 소망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는 유언 형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망과 의지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이 땅의 현실에 내재한 모든 모순과 억압을 해소하여 우리 나라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가 대상인 '너'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너'는 화자에게 소중한 대상을 의미한다. 시적 화자인 '나'는 소중한 사람인 '너'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즉 이 시는 자기 희생을 통해 우리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 요소를 해소하며 우리 나라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화자의 단호한 결의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시적 화자의 희생은 온전히 '너'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너'는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연가풍으로 되어 있는 형식으로 보아 화자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시인의 참여시 경향으로 보아 새로운 세계를 누리고 살아갈 후손(민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시적 화자는 소중한 대상을 둘러싼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신동엽이 쓴 많지 않은 서정시들 중의 한 작품이다.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라는 구절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돌아가는'은 '와서'가 아니라 '살아라'와 대비되고 있다. '돌아가는'이 뜻하는 바는 '(되)돌아가는'이 아니라, '죽는'인 셈이다. 화자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두고 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인 '너'의 삶을 걱정하며 배려하고 있다. 이어서, '나'는 '묵은 순'처럼 사라질 것이니까, '너'는 '새순'이 돋듯 삶을 이어 가길 부탁한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화자는 '너'의 삶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이곳(이 근처)에서 이어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아마도 화자 자신의 애정과 배려가 가득 묻어 있는 공간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일단 죽음을 앞둔, 혹은 각오하고 있는 화자가 혼자 남게 될 연인을 생각하면서, 그 연인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내용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묵은 순 터 새순 돋듯'이라는 비유를 곰곰이 음미해 보면, 어쩌면 화자는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살아온 기성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물러나고 나면, 기성세대가 힘들게 다듬어 놓은 그 시 · 공간에는 이제 뒤 세대들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신동엽의 일반적인 작품 경향을 생각해 본다면, 화자(기성세대)가 청자(뒤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 시 · 공간은 민주화된 세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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