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하루만의 위안>(195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주지적, 관조적, 애상적, 낭만적

표현 : 평이한 시어의 사용과 직설적인 정서 표현이 두드러짐.

              동어 반복을 통해 주제를 부각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낙엽과 슬픔 → 시적 자아는 낙엽이 떨어지는 숲속 길을 걷다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죽음, 이별 등을 떠올리며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연상한다. 그래서 화자는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독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고독하고 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가는 목소리 → 낙엽 지는 소리

    * 얇은 피부 → 섬세하고 연약한 마음

    * 항시 보이지 ~ 살고 싶다 →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 비 내리는 ~ 디디고 돌아온다. → 고독과 슬픔 속에 방황하는 모습

    * 나의 소리 → 낙엽 지는 소리

    

제재 : 낙엽과 고독과 슬픔

화자 :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비극적 존재의 모습

 

주제고독한 삶(인간의 근원적 고독감)

[시상의 흐름(짜임)]

◆ 1 ~ 7행 : 낙엽 속의 고독한 나

◆ 8 ~ 14행 : 고독과 슬픔 속의 방황

◆ 15~17행 : 낙엽과 함께 하는 고독한 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조병화의 일관된 시의 주제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다. 이 시도 고독한 나그네의 노래이다.

낙엽은 구름처럼 떠돌며 물처럼 흘러서 정처 없이 떠나야 할 자신의 분신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 숲을 거닐면서 시적 화자는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힌다. 시적 화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인간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떨어지는 낙엽'과는 대조적이다. 떨어지는 낙엽 속에 화자 자신이 버려지는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슬픔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고독과 슬픔 속에 한참을 배회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고독한 삶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제1~7행에서 '나'는 번잡한 세상을 떠나, 낙엽이 지고 있는 숲속을 거닐고 있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엽 속에 앉아 지난날을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낙엽 위에 누워도 본다. 가을의 쓸쓸함과 고독 속에서 나의 머리 속에는 무수한 상념이 떠오르며, 그것을 잊으려고 머리를 흔들며 어디선가 또 낙엽지는 소리가 귀를 쫑긋하게 한다. 올려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내다보이고 나는 따스한 가을 햇살 속에서 문득 초조함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곳 -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있기에 고독과 슬름 속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제8~14행은 낙엽 속을 거닐며 느끼는 쓸쓸함과 고적함과 슬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낙엽은 떨어지고, 나는 낙엽 속에 묻혀 버리기로, 말할 수 없는 고독과 슬픔을 안고 어두운 밤길을 헤매며 방황한다. 집에 돌아와 방안에 앉아서도 어두운 밤에 낙엽이 지는 그 밤길을 생각하며 마음의 방황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제15~17행은 처음에 나온 말을 반복하며 결말을 짓는 부분이다. 핵심이 되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키는 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일관된 주제인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 이 시에서도 드러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정처없는 나의 운명, 그것은 곧 낙엽의 운명이며, 그러기에 나는 하나의 낙엽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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