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가 만들어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험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짓길 황톳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리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나의 칼 나의 피>(1987), 인동-

 

해           설

[개관 정리]

주제 : 투쟁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쟁취를 갈망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급하게 읽지 말고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한번 읽으면서 시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의 정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보자. 첫 번째 질문은 별과도, 공기와도,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이고, 그 힌트는 토지, 곧 땅에 심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힌트를 우리는 그것이 식물임을 알 수 있다. 한 행 한 행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노력 없이 시로써 해방을 꿈꾼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해답은 두 번째 연의 마지막에 있다. 나무는 나무이되 '자유의 나무'이다. 이것을 통해 각기 따로 존재했던 1연과 2연이 하나로 견고하게 묶이게 된다.

3연에는 다시 두 번째 질문이 주어진다. 이 자유의 나무를 누가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답을 예상해 보고 4연의 '천만에'와 대조해 보자. 자 이제 세 번째 질문이 나간다. 나는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무엇을 놓고자 하는가이다. '무엇을'에 해당하는 해답이 생략된 채 '어디에'만이 계속 더욱 강렬한 높이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아니 솟구쳐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형상으로 번져오고 있다. 마침내 심장에 도달할 때까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칼이자 피다. 칼이자 피를 길, 모든 사물, 입맞춤, 잠자리, 옛무기, 가슴, 심장 위에 놓는다는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마지막 연의 자유, 자유의 나무 때문이다. 자유란 오로지 칼과 피를 우리들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놓을 때 비로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자유라는 애매모호한 대상을 놓고 접근하고 있지만 동시대의 시인들과는 전혀 다른 숨가쁜 호흡 속에서 새로운 자유의 영역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그 가쁜 호흡은 그가 주로 묘사에 기대기보다 당당한 짧은 서술에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의 웅혼한 사상을 담기에 묘사는 너무 자잘한 느낌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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