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이중섭

                                                                              -김춘수-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김춘수 시집>(197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회고적, 회화적, 묘사적

특성

① 낯선 표현과 색채어를 활용한 표현이 돋보임.

②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에피소드를 하나씩 담은 병렬적, 대비적 구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 머리 속이 온통 바다로만 가득 차 있는 상태를 표현한 듯하다. 여기서 바다는 그 다음에 나오는 동경에 있는 '아내'와 관련이 있음.

*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 아내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마음

* 발자국 → 이중섭의 흔적 · 자취 또는 아내의 그것으로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

*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 광복동에서 만난 후 한동안 이중섭을 만나지 못함. 또는 아내가 오지 않는 상황을 의미함.

*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 아내를 기다리기를 포기하는 마음

*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 도치법의 사용

 

제재 : 이중섭

주제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

           아내를 그리워하던 생전 이중섭 모습에 대한 추억

[시상의 흐름(짜임)]

◆ 전반부 : 일본에 있는 아내와의 만남에 대한 갈망

◆ 후반부 : 만남의 좌절로 인한 절망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에서 무슨 뜻일까 많이 고민했고, '진한 빛깔'이라는 표현이 시를 이해하기 힘들게 했다. 하지만 이 시어들을 이해했을 때는 이중섭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고뇌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슬픔이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이중섭의 애타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의 대상인 이중섭의 아내는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절 사랑했던 일본인 여자 후배로, 1945년 이중섭은 천신만고를 겪으며 원산까지 찾아온 그녀와 결혼한다. 그 후 행복한 생활을 하던 이들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가 모진  고생을 한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고생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병고에 시달리게 되자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부산으로 나와 작품 활동을 한다.

이 시는 이 무렵의 이중섭이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타는 마음을 회화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1행에서 8행까지는 아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중섭의 설레는 마음을 회화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바다의 푸른색 이미지는 아내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중섭의 설레는 마음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 역시 이중섭의 들뜬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9행 이하는 아내와 만날 수 없는 이중섭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진한 어둠'에는 이러한 이중섭의 어두운 내면이, 바다를 한 뼘 한 뼘 지우는 행위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 잘 담겨 있다.

 

◆ 김춘수의 말 : <이중섭> 연작시에 대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국(일본)으로 아내 남덕을 보낸 이중섭,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화자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화가로서보다는 한 개인의 외로움 때문에 많은 시인들이 그를 노래한 것일 것이다.

나의 연작시 <이중섭>은 이중섭의 그림 몇 폭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그의 전기적인 일면과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이 어우러져 있다. 나는 그를 예술가로서 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희귀한 자질의 인간으로서 보았다. 지리학적 속도와 변동의 시대에 있어서 그와 같은 인물은 하나의 기적일 수도 있다. 개체로서 그는 그렇게 시달리고 버림당했는데도 그가 원천적으로 잃은 것은 한 개도 없다. 그는 퇴화된 그대로 문명의 생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문명인인 나에게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이중섭> 연작시는 내가 추구하고 있는 지점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있다.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에 그런 희생을 나로서는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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