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綿綿)함에 대하여

                                                                                    -고재종-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 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 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 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리겠니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199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교훈적, 설득적, 비유적

특성

① 2연과 4연의 상황의 대조

② 어순을 도치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함.(1연)

③ 권유의 태도를 지닌 설득적 어조의 목소리

④ 반복과 변형을 통해 주제의식을 강화함.(3연)

⑤ 대상에게 말을 건네는 어투를 사용하여 친근감을 형성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너 들어 보았니 → 상대방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의 대화체를 서두에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환기함.

* 동구 밖 느티나무 → 동구 밖의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당산나무'이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잔치를 벌이기도 하는 '정자나무'로서 이 작품을 지배하는 소재이다.

* 푸르른 울음소리

   → 공감각적 이미지(청각의 시각화)

       나무의 푸른 잎 = 시련을 딛고 뿜어져 나오는 자연의 생명력

      '푸름'의 색채어는 생명력을 환기함과 동시에 '꿋꿋함', '날카로운 깨달음'의 속성을 함축함.

* 날이면 날마다

   → 도시화로 인해 농촌공동체가 점점 황폐화되고 파괴되어가는 상황을 반복을 통해 제시함.

* 삭풍(겨울바람, 된바람) → 농촌의 현실과 상황을 상징함.

* 되게는 치고 → 무섭게 불어댄다는 의미로, 70년대 이후 점점 피폐해지는 농촌의 현실을 암시함.

* 우듬지 → 생장점이 있는 나무줄기 꼭대기로, '상승과 지향'의 속성을 지님.

*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 겨울

   → 일반적으로 별이 '꿈과 희망'을 상징하므로, 겨울은 '절망적인 현실'을 비유한 것임.

*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 표면적으로 보면 겨울바람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등의 피해를 입은 나무의 모습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처'는 마을 사람들의 것으로 '가난, 빚'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나무'는 '마을 사람들'을 뜻하는 시어로 볼 수 있다.

*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 절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극복하겠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가 엿보임.

* 다 → 화자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강조하는 부사어

* 청산하고 떠나 버리는 마을 

   → 경제적 파탄으로 이농할 수밖에 없는 농촌의 현실, 해체된 농촌 공동체의 단면

* 잔치 → 농업이 대접받을 수 있었던 지난 호시절로 경제적 안정의 상태를 뜻함.

*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 화자의 애정이 드러난 표현, 농촌 공동체 회복이 필요함을 역설함.

*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 느티나무의 소망을 통해 화자의 견해를 드러냄.(대구, 반복)

*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 근본적인 각성과 깨달음이 필요함을 강조함.

       혹독한 시련을 견디며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지를 암시함.

* 오늘 → '지난 겨울'과 대조됨.

*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 생명력이 '푸른 잎'으로 승화됨을 나타냄.

* 초록의 광휘

   → 왕성한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면서 겨울의 온갖 시련을 극복한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임.

* 앞들에서 모를 내다 / 허리 펴는 사람들

   → 모를 심는다는 행위는 농토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땅'을 사랑하는, 화자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존재이며, '허리를 편'다는 행위는 힘든 노동이지만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함축한 짧은 '휴식'의 상승 이미지이다.

* 왜→ 반복을 통해 주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자 함.

* 쳐다보다 → 교감과 동화의 감정을 나타낸 것임.

* 북소리

   → 울림의 각성과 진군의 이미지를 통하여 긍정적인 화자의 소망을 강조함.

       나무가 지닌 생명력이 농촌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는 상황을 형상화함.(청각적)

* 면면함 → 끊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 있음.

* 4, 5연 → 시련을 이겨낸 나무의 의연함을 닮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남.

 

제재 : 느티나무(울음소리)

주제계속되는 시련을 꿋꿋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2연 : 지난 겨울의 시련을 꿋꿋이 이겨 낸 느티나무의 푸른 울음소리

◆ 3연 : 무너지는 농촌 공동체에 대한 회복을 외치는 소리

◆ 4연 : 시련을 이겨 낸 느티나무의 푸르른 생명력

◆ 5연 : 느티나무의 생명력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전이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제목에서 '면면함'이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시련의 연속이라는 것,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을 그야말로 면면하게 이겨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이 작품은 중심 소재인 느티나무의 겨울에서 봄으로의 변화, 시련의 극복을 통한 왕성한 생명력을 통하여 날로 공동화되고 피폐해지는 농촌 공동체의 회복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 생태주의 시라고 볼 수 있다.

해체되어 가는 농촌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는 이 시는 '마을'의 아픔을 '느티나무'의 형상 속에 겹쳐놓고 있다. 그러나 '겨울'을 이겨낸 '나무'가 상처를 회복하며 생명을 이어가듯 농촌 역시 생명력과 공동체를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는 다시 생(生)의 의미로 확장되어, 면면히 '겨울'을 이겨낸 '나무'와 같이 끊임없이 난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면면함'은 이 시의 주제를 함축한다.

시련을 견디며 생명력을 이어가는 '나무'와 같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끊임없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면면함'의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느티나무'와 '사람들'의 삶이 동일시됨으로써, '면면함'의 의미가 고난을 이겨내는 끈질긴 삶과 생명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 이숭원

우리는 고재종의 시 제목이 왜 '면면함에 대하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면면함이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이 시가 담고 있는 주제를 함축한다. 이 시는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가 이파리에 전이되고 그것이 생생한 초록의 광휘로 솟아나오면서 북소리까지 우렁차게 울려나오는 북소리가 다시 흐느끼는 울음소리로 꺾일 수도 있다는 위험성까지 내포한다. 그러나 더 큰 시련이 밀려와도 결국은 허리를 펴고 초록빛 이파리를 다시 울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자연의 이법을 통해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이것이 바로 이 시의 제목인 '면면함'이 갖는 의미이다. 면면함이란 시련을 한번 극복하고 일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시련의 연속이라는 것,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을 그야말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지난 겨울 휘몰아친 삭풍에 나무는 온갖 시련을 다 겪었다. 가지 끝에 별 하나도 드리우지 못했던 나무는 온몸에 상처를 입으며 처절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러나 봄이 오고 여름이 오자 그 상처투성이의 몸에 다시 잎이 돋아나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눈부시게 펼쳐낸다. 농촌 사람들 중 이제는 잔치가 끝났다고 짐을 싸들고 농촌을 떠나 버린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그 흐느낌은 흡사 삭풍에 시달리던 느티나무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모두 떠나 버린 마당에 아직도 농촌에 남아 허리 굽혀 모를 내는 사람들. 그들은 삭풍에 시달리던 상처투성이의 느티나무가 초록빛 이파리들은 이렇게 그들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생명은 원래 이렇게 면면하며 삭풍의 상처를 뚫고 솟아오를 때 생명은 더욱 생생한 광휘를 띠게 된다고.

우리는 이 시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구원의 북소리를 듣는다. 상실의 끝판에서 울려나오는 부활의 소리를 듣는다. 둥둥둥 울려나오는 그 북소리에 이끌려 우리는 휘어진 허리를 펴고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본다. 그리고 거기서 삭풍의 시대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서정시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 이러한 서정시의 면모는 일제 강점기 어둠의 공간에서 시를 쓰던 우리의 선배 시인들이 보여주던 것이기도 하다. 비단 우리의 경우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건 어둠에 봉착했던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그리며 토해내던 서정적 표출의 양식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정시의 전통은 이처럼 유구하고 면면하다.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미래에도 서정시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하고 우리를 더 놓은 자리로 고양시킬 것이다. 서정시의 위력과 광휘는 그렇게 면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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