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

                                                                              - 김종삼 -

                                                       

 

 

 

희미한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 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십이음계>(1969)-

 

해                설

제재 : 물통(평화)

주제 : 평화롭지 못한 세계에 대한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물통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인식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어로 형상화한 시로, 여기에선 '물'은 '평화' 또는 '인간 영혼의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1연에서 화자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는 단절된 세계다. 그리고 풍금 소리는 아름답고 음악적인 선율이 자아내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세계를 표상한다. 그런데  '툭 툭'에서 느껴지는 단절감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풍금 선율로 드러나는 평화로운 현실이 파괴되고 깨지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2연에서 화자는 평화가 깨어지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자문(自問)한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연에서는 2연에 대해 '다름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 물 몇 통 길어준 일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대답한다. 화자의 태도는 겸손하기 짝이 없지만 매우 소중한 일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름아닌'이라는 말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으며, 인간을 상대로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은 인간을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물'은 '부드러움, 정화, 화합, 소통, 사랑'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간에게 물을 길어다 준 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도 볼 수 있다.

4연은 문장이 종결형으로 끝나지 않아 시의 모호성이 드러난다. 시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 보면 '아직도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다'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통을 길어다 주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통은 해소되지 않았음을 여운을 남기면서 보여주는 것이다.

 

■ 김종삼(1921~1984)

시인, 황해도 은율 출생. 평양의 광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도요시마(풍도) 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영화 조감독으로 일하였고, 유치진에게 사사, 연극의 음향 효과를 맡기도 하였다. 6 · 25 전쟁 때 대구에서 시 <원정>, <돌각담>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57년 전봉건, 김광림 등과 3인 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1968년 문덕수, 김광림과 3인 연대시집 <본적지>를 발간하였다. 초기 시에서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냈다.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 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하였다. <십이음계>, <북 치는 소년>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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