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서기

                                                                              - 정희성 -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을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더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로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 바닥에

세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비판적, 민중적

표현 : 반어적 표현을 사용하여 모순되고 부정적인 현실을 풍자함.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을 패러디하여 현실의 모순을 고발함.

             구어체 종결어미 '-더라'를 사용하여 상황에 대한 객관적 전달을 시도하고 있다.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

       → 모순된 현실에 대한 반어적 표현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핍박받고도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상황

           노동자들의 뿌리 뽑힌 삶을 제시함.

    *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 '말'과 관련된 속담을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부정적 현실에 대해 고발함.

               현실에 대해 할 말이 그만큼 많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함.

    * 듣거라 세상에 원 →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영탄적으로 표현함.

    * 누이는 피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 쌍심지를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을 파괴하는 노동이 되어 버린 현실을 표현함.

    *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눈으로 삼켰더라.

           →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가난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함.

               '그림의 떡'이라는 표현이 연상됨.

    * 대낮에 코를 버히니 /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 삭막하고 기막힌 현실의 비애

    *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고단한 현실

    * 빵만으로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욕구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

    *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고 → 정상적인 사고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현실 풍자

    *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

        → 농민의 삶 역시 뿌리뽑힌 상태임을 암시한 표현으로, 아버지의 근심과 시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

 

화자 :  '누이'로 표상되는 고달픈 노동자들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근대화의 명분을 내세워 노동을

                      착취하는 현대 산업 문명을 비판함.

주제노동자와 농민들의 뿌리뽑힌 삶의 현실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뿌리 뽑힌 삶에 대한 고발

◆   4 ~ 16행 : 고된 노동의 현실과 비애

◆ 17 ~ 20행 : 뿌리 뽑힌 농촌의 현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누이로 표상되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핍박받고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을 대지에 박혀 있어야 할 뿌리가 거꾸로 서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란 제목에서부터 이 시의 의미를 알 수가 있다. 물이 거꾸로 흐를 수 없고, 시계가 거꾸로 가선 안 되듯이,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부정부패와 같은 모순된 현상을 질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로 시작하여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로 끝맺어지고 있다. 하늘이 아닌 땅으로 뿌리가 내려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을 어이없게도 그렇지 않고, 허공이라는 불안한 곳에서 늙으신 아버지의 수염만이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수염'은 시간의 경과이자 그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오를 수 없는 미끈한 절벽과 같은 세상에 시인은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위를 한 번도 오르지 못해 본 사람들 모두의 목소리인 것이다.

밑바닥에 사는 사람, 즉 위에 올라서 보지 못해 본 사람의 얘기라고 할 수 있는 시다.

정희성은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 시대의 노동 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슬픔을 노래해 온 시인이다. 이 시 역시 정희성의 시세계를 잘 드러낸 것으로,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모델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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