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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가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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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굴창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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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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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정리] ◆ 성격 : 상징적, 대화적 ◆ 표현 * 사물의 생태적 속성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 대화 형식을 통해 절망과 위로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진정한 우정의 확인을 통해 부정적 현실의극복을 암시하고 있다.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손 붙들고 → 연대의식의 표현 * 토한 뒤 ~ 풀고 나서 → 부정적 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술을 마심 * 잿빛 하늘 → 부정적 현실 * 꽃 시절 → 화려한 시절, 세속적 의미의 성공 * 무화과 → 아름다운 젊음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암울한 현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는 소재로, 밖으로 꽃을 피우는 삶보다도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속으로 꽃을 피운 삶 * 손 뽑아 ~ 주며 → 화자를 위로해 주는 행위 * 일어나 둘이서 → 진실한 우정의 확인, 부정적 현실 극복 암시 * 검은 개굴창가 → 암울하고 부정적인 현실, 가난하고 어두운 현실 공간 * 비틀거리며 걷는다 → 부정적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 * 검은 도둑괭이 → 부정적 현실속에서 영악하게 살아가는 존재. 자본가, 정치인 상징
◆ 주제 : 암울한 현실 상황 속에서 삶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삶 어두운 현실과 그로 인한 삶의 고통 | |||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암울한 현실 상황으로 인한 고통 ◆ 2연 : 암울했던 젊은 날의 자조에 대한 친구의 위로 ◆ 3연 : 여전히 암울한 현실 앞에 놓인 화자 |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군부 독재 시절의 억압적 현실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데, 당시의 억압적 현실 상황은 화자로 하여금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꽃 시절')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길을 '비틀거리며 걷'게 만든 현실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겉에서 꽃이 보이지 않고 열매가 열리는 '무화과'의 생태적 특징에 착안하여 억압적 현실 상황으로 인해 청년기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누려 보지 못한 데 대한 회한(悔恨)과,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을 형상화하고 있다.
술에 취한 화자가 구토를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시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진행된다. 기진맥진한 화자는 문득 '잿빛 하늘'을 올려다본다. 현실은 암울하고 화자의 삶도 어둡다. 문득 화자는 자기의 신세가 무화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무화과처럼, 꽃 시절도 누리지 못한 채 세상에 너무 빨리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자기의 삶에 대해 회한에 잠기는 것이다. 이때 나의 친구가 똑같은 사물을 전혀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나를 위로한다. 무화과를 꽃 없이 열매 맺는 식물로 보지 말고, 열매 속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친구는 화자에게 '너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너는 속으로 꽃을 피운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가 무화과와 비슷하다면 그것은 꽃을피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속으로 꽃을 피운다는 점 때문이다. 친구는 나의 삶이 화려한 꽃을 피우며 꽃 시절을 누린 사람들의 삶보다도 더 가치 있는 삶, 성숙한 삶, 아름다운 삶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는 무화과의 이미지이다. 내 감각의 깊이는 무화과를 끈적끈적함과 연관시킨다. 그것은 복숭아의 부드러운 꺼끌꺼끌함, 배의 딱딱한 시원함에 대비되어 있다. 내 감각의 깊이엔 사과가 자리잡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고향에는 사과나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의 무화과는 내 감각의 깊이를 혼란시키고 새 감각소를 추가한다. 그 감각소는 여성성이다. 시의 1연에서 나는 여성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나는 돌담에 기대(쭈그리고 앉아)있고, 친구의 손을 잡고 있으며,눈물 콧물 흘리며 토하고 있다. 나는 잿빛 하늘을 우러러보려 하지만, 무화과 한 그루가 그것마저 가리고 있다. 여성적인 나는 이 세계 밖(하늘)을 바라보려 하지만, 무화과는 그것을 가로막는다. 여성적인 내가 바라보는 것을 막고 있으니까, 무화과나무의 이파리들은 남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 친구는 여성적인 나와 남성적인 무화과잎 ― 하늘을 가릴 정도일까, 그 무화과나무는 무성한 잎을 갖고 있다. ― 의 매개물로서 그는 여성적인 나에 대해서는 남성이지만, 무화과에 대해선 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무화과잎은 나와 친구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감싸고 있으며, 부정적으로 보자면 하늘과 차단하고 있다. 그것은 보호자이며 규제자이다. 1연에서 무화과잎으로 남성적 성격을 드러낸 무화과는 2연에서 열매로서 여성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것은 나에게 꽃시절이 없었다고 탄식하는 나를 달래는 어머니 같은 성격의 친구가 제시하는 과일이다. 그 과일은 물론 실제로 제시된 과일이 아니라 말로 제시된 과일이다. 너는 이 무화과 같다! 그 무화과는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과일이다. 그것은 특이한 과일이다. 그 특이성은 그러나 부정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적 성격을 갖고 있다. 무화과는 다른 과일과 다르게 꽃 없이 열매맺는다. 너는 그러니까 특이한 사람이다. 그 다음, 무화과는 열매 속에서 속꽃이 핀다. 대개의 과일은 꽃이 핀 뒤에 열매가 맺는다. 그런데 무화과는 열매 속에 꽃을 피운다. 열매는 단단함이라는 감각적 깊이를 갖고 있다. 그 단단함 속에 아름다운 꽃이 간직되어 있다. 대개의 과일은 열매 속에 달디단 과육을 간직하고 있지만, 무화과는 꽃을 간직하고 있다. 무화과는, 나나 친구에게 먹는 과일이라기보다는, 속꽃을 피어나게 하는 토양으로 인지되고 있다. 단단함 속의 부드러운, 아름다운 꽃! 무화과는 남성적 단단함 속에 여성적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 여성적 화려함이 내 절망을 달랠 수 있는 감각소이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잎의 남성성과 무화과의 여성성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자웅동체이다. 무화과라는 이미지는 잎만으로 이뤄질 수도 없고, 열매만으로 이뤄질 수도 없다. 그것은 그 둘의 결합, 아니 합일에 의해 이뤄진다. 그 이미지의 내면에서는 환한 꽃이 피어나고 있다. 그 내면의 꽃이 무화과에 여성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시의 특이한 점은 나나 친구가 무화과의 그 여성성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연에서의 여성적 나와 남성적 무화과잎의 대립은 2연에서 속에 꽃을 간직한 열매라는 여성성에 의해 해소될 듯한 징후를 보인다. 해소가 이뤄진다면, 분리 ― 화합의 제의적 성격이 두드러질 텐데, 실제로는 해소가 연기된다. 3연에서 나와 친구는 비틀거리며 개울가를 걸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해소가 이뤄진다면, 꽃에 대응하는 밝음의 세계가 나타나야 할 것인데, 그 밝음의 세계는 나타나지 않고 어두운 뒤틀린 세계만 나타난다. 그 어두운 세계는 검은 개울이라는 심연의 이미지의 도움을 받아 그 불길함을 길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나나 친구는 그 검은 개울 ―― 심연 속에 빠지지 않느다. 그들은 유예된 해소의 시간 속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질 따름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검은 도둑괭이 한 마리가 검은 개울 ―― 심연을 날쌔게 가로지른다. 마법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검은 고양이의 갑작스런 나타남은 이 시의 세계가 밝은 해소의 세계로 진전되지 않고, 검은 마술의 세계로ㅡ 진전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마술의 세계, 보들레르가 인공낙원이라고 부른 검은 낙원의 세계, 술과 마약의 세계에 이 시는 연계되어 있다. 세계는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속에는 그러나 꽃이 있다라는 화해로운 인식이 이뤄지는 대신, 아니 그 인식이 계속 유예되면서 검은 마술의 세계가 갑작스럽게 제시되는 이 시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시적 긴장을 획득한다. 왜냐하면 화해로운 인식이 이뤄지는 순간에, 말이나 말로 이뤄지는 시의 세계는 이미 거추장스러운 걸리적거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계속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그 인식이 계속 유예되어야 한다. 해소는 유예되고 그 해소에 대한 그리움만이 남아야 시를 쓸 수 있다. 시인의 표현을 빌면, "꿈은 그리움을 빗장으로"하기 때문이다. 그 꿈은 "이제 잘리고 찍힌 나무결 속에서 깊은 한을 품은 채 해방을 그리는 모든 나무들의 야생의 꿈"이다. *출처 : 김현(문학비평가)의 '김지하의 무화과'에 대한 평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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