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보며

                                                         - 서정주 -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공론>(1954)-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관조적, 긍정적, 교훈적, 설득적

표현 : 시각적,  촉각적 심상

서정적 자의 태도 : 궁핍 속에서도 높은 정신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의연한 태도

                (서정적 자아의 가난에 대한 귀족적 의연함이 거짓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음)

 

중요 시어 및 시구

* 가난이 한낱 남루이다

   → 가난이 육신을 초라하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쉽게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고의 표현임.

       가난을 통해 삶의 소중함, 가정의 따뜻함, 세속적 욕망으로부터의 초월 등의 자세가 중요함을 말하고자 함.

* 갈매빛 → 짙은 초록빛

                 가난의 색깔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씨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표현임.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마음씨를 색채감 있게 표현함.

* 여름 산 →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

*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 → 인간의 본질적 모습(본성), '옥돌'과 관련됨.

* 새끼 → 질긴 핏줄과 본능적 요소에 호소

* 농울쳐 → 물살이 갑자기 세차게 흐르는 것

* 목숨이 농울쳐 휘어드는 / 오후의 때 → 가난과 굶주림으로 피로와 허기를 느끼는 때

* 가시덤불 쑥구렁 → 형극(고난과 절망의 삶),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한 삶의 조건

* 옥돌 → 영원히 썩지 않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정신

* 청태 → 푸른 이끼.  자기의 삶 속에 끼여드는 여러 가지 지저분한 것들을 인위적으로 뜯어서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연륜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성숙한 삶' 또는 '삶의 품위와 지조'를 뜻함.

 

주제 ⇒ 삶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긍지와 신념

               (삶의 궁핍함을 이겨내는 여유 있고 넉넉한 정신 자세)

" 무등산 "의 의미
      → 크고 의젓한 자태를 뽐내는 무등산은,  주변의 그 어떤 환경에 대해서도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주어진 그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도 담담하고 의젓한 모습을 잃지 않는 넉넉한 모습의 산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물질적 가난의 한계(꿋꿋한 삶에 대한 신념 제시)

◆ 2연 : 인생의 의연한 긍정 정신(미래세대에 대한 희망)

◆ 3연 : 곤궁한 생활의 한 단면(가난의 고비를 함께 이겨내려는 모습)

◆ 4연 : 부부의 사랑과 위로

◆ 5연 : 현실을 이겨내는 넉넉한 정신 자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6.25 직후 광주에 기거하며, 조선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끼니를 굶을 정도의 궁핍한 삶을 영위하였다. 물질적 궁핍의 불가항력 속에서 시인은 언제나 변함없이 의연한 자태를 보이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이 시를 썼던 것이다.

가난이란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일 뿐, 그 속에 있는 몸과 마음의 근원적인 순수성까지를 덮어 가리지는 못한다는 것이 작품 전체의 의미를 떠받치는 바탕이다.  물질적인 궁핍은 흔히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참다운 가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지만, 어떤 시련에도 흔들림 없는 산의 모습에서 시인은 의연한 삶의 형상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 문학의 전통 속에서 산은 무한한 덕과 인내심, 지혜를 가진 존재로 표현되어 왔다. 이 작품 또한 무등산의 넉넉한 모습을 통해 그러한 의미를 재확인하게 된다. 시인은 푸른 산이 그 품안에 지초와 난초 같은 기품 있는 풀꽃들을 기르듯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우리는 슬하의 자식들을 소중하고 깨끗하게 기를 수밖에 없다는 의연한 긍정의 자세를 취한다.

물론 이러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삶의 어려움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때때로 힘겹고 괴로운 때가 온다면, 지아비와 지어미가 서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랑과 넉넉한 인내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가시덤불, 쑥구렁 속의 옥돌처럼 버려진 채 살아간다 할지라도 차라리 푸른 이끼가 자욱하게 끼도록 말없이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산의 자세, 산의 지혜를 권하는 것이다.

 

[이 시에 대한 비판] - 김상욱 -

…… 가난이란 고작 걸치고 있는 누더기일 뿐, 우리들의 타고난 몸과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아닙니다. 서정주는 틀렸습니다. 누더기가 얼마나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할퀴고 지나가는지 그는 알 턱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로 보아, 서정주는 한 번도 누더기를 걸친 채 남들 앞에 나서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오직 그것만이 벌거벗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옷가지일 때는 사정이 다른 것입니다. 가난은 충분히 '타고난 살결과 마음씨'를 여지없이 망가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대부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노동자는  선하고 성실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힘 닿는 대로 노동하고, 힘 닿는 대로 남을 돕고자 했습니다. 저녁이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야간학교나마 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친구는 오래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하루 8시간 노동만으로는, 그것으로 받는 돈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작 13만 원으로 어떻게 늙으신 어머니와 버티어나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에 다시 공장으로 가 잔업과 철야를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자연 쉴 시간을 가질 수 없었고, 그가 시름시름 병이 든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이 들자 그는 공장과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집에서 '호젓이 옥돌처럼'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술집으로 가고 말았지요. 아마 서정주는 '뭐 그런 못난 사람도 더러 있겠지.' 하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가르쳤던 이 처녀 아이는 유난히 불행한 아이가 아닙니다. 저랑 함께 했던 모든 노동자들이, 아니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이렇게 숨죽이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서정주는 가난이란 고작해야 누더기 같은 것이고, 벗어 버리면 그만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모든 가난한 이들이 걸친 누더기는, 서정주의 누더기처럼 언제라도 벗을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누더기는 이미 살갗의 일부가 되어 버렸는데도 말입니다. 한번 서정주더러 '위대한 시인이여, 그대도 한번 껍질을 한꺼풀 벗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마치 누더기를 벗듯이' 라고 요구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비명을 지르시는군요. 제가 잔인하다고요? 시인은 그럴 수도 있다고요?

아, 물론이지요. 시인은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있고,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여진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고집 센 한 영혼이 마음대로 떠벌인 생각은 다만 자기 만족일 뿐입니다. 자기기만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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