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無等)

                                                                              -황지우-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 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이난,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실험적, 현실비판적

특성

① 반복적이고 희망적인 어조

 

주제 :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무등산과 무등산을 통해 바라보는 밝은 미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제목에서 보듯 이 시는 무등산을 노래하고 있다. 첫 행의 산은 한자로 크게 써놓고 그 다음부터 산의 모양에 견주어 한 행 한 행을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그려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적인 형식이 이상의 난해한 시와 다른 점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의미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시가 있기까지의 무등산이 지닌 역사를 알아야만 하지만.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누가 모를리 있겠는가. 무등산이 그 넓은 산자락으로 끌어안고 있는 광주와 그 광주에서의 고난을. 이 시에서 무등산이란 곧 고난의 광주이며, 산을 수식하는 많은 형용사들이 곧 광주항쟁의 의미를 전하는 형용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의 전반적인 구성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다시 미래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이할 수 있다. 절망의 산에서 함성의 산으로, 그러나 죽음의 산으로, 다시 희생의 산, 마침내 우리를 감싸주는 어머니로 끝나는 나름대로 항쟁의 역사를 되살리고자 하는 웅장한 구도를 갖추고 있다. 더욱이 다시 한번 읽어보면, 이 시의 행갈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하고 다음 행으로 넘어간 곳을 자세히 보면 호흡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곳에서, 아니면 다소 길게 이어져야 할 곳에서 행이 바뀐다. 예를 들면 5행 '침묵의'와 7행 '회생의'는 끊어 읽어야 하는 곳이며, 3행이나 밑에서 둘째번 행은 길게 늘여 읽어야 하는 곳이다. 소리내서 한번 읽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단순한 기법의 새로움뿐만 아니라 기법의 새로움을 통해 시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전하고자 한다. 적어도 이상의 시가 문학사의 한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 그 시대의 고통을 자신의 시에로 옮겨놓았기에 가능하듯, 그의 시가 오래 그리고 널리 읽히는 것도 역시 형식의 실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통해 얻고 있는 더욱 큰 의미의 전달에 있다.

 

◆ 더 읽을거리

우선 이 시는 산의 모습처럼 시어를 삼각형으로 배열함으로써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삼각형의 독특한 형태는 형태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제목 '무등'과 첫 행의 '山'이라는 시어를 통해 독자는 시인이 단순히 산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의 철학적 의미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 속에서 쟁점이 되었던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무등산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즉 이 시는 우리의 현재적 삶과 관련된 역사적 공간으로서 무등산의 다양한 의미를 특이한 행의 배열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행의 점층적 확장과 함께 무등산의 이미지가 앞 부분에서는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절망적인 내용(절망의 산, 민둥산, 벌거숭이 산, 분노의 산)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뒷 부분으로 가면서 민중의 역사적 힘과 희망에 가득찬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내용(폭발적인 산, 힘센 산, 일어나는 산, 눈 뜨는 산, 희망의 산, 평등의 산)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시는 상투화된 서정시의 오랜 경직성에 대해 혁명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황지우의 실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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