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木具)

                                                                              - 백   석 -

                                                       

 

 

 

오대(五代)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옛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 몇 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의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우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 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애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옛조상들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 수원백씨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문장>(193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향토적, 토속적, 민속적

표현 : 일상적인 생활어의 목소리

              생활어(토속어)의 사용으로 소박함을 보임.

              산문율이면서도 반복과 나열과 연쇄에 의한 외형적 율조를 지님.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들지고방 → 외따로 지은 뒤주형 고방

* 말쿠지 → 말코지.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에 달아놓는 나무 갈고리

* 신뚝 → 신주(죽은 이의 위패)를 넣는 독

* 데석님 → 제석님.  무당이 섬기는 신의 하나로, 가신제(家神祭)의 대상임

* 매연지난 → 매년 지낸

* 최방등 제사 → 초복제(招福祭)

                         평북 정주 지방의 전통적인 제사 풍속으로, 5대째부터는 차손(次孫)이 제사를 지낸다.

* 대멀머리 → 대머리

* 외얏맹건 → 오얏망건. 망건을 눌러 쓴 모습이 오얏꽃 같이 단정하게 보인다고 해서 표현한 말임.

* 지르터 맨 → 망건 따위를 쓸 때, 뒤통수 따위를 눌러서 꼭 졸라서 맨

* 교의 → 신주 모신 틀

* 보탕 → 제기에 담긴 탕

* 반봉 → 큰 숭어를 말하는 듯함. 생선 종류를 통칭함.

* 귀애하고 → 귀엽게 여겨 사랑하고

* 합문 → 제사 절차 중의 하나로, 밥그릇의 뚜껑을 열고 젯매에 숟가락을 꽂은 다음 망자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문을 닫거나 병풍을 치고 밖으로 나와 몇 분 동안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 흠향 → 귀신이 음식을 받아서 먹음.

* 호호히 → 넓고 깨끗하고 맑은

 

제재 : 목구(가족사의 매개물, 그리움의 상관물) → 제사 → 가족사 → 민족사

주제유한한 개체를 초극한 영원

           가족사와 함께 하는 목구의 의미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오대에 걸친 큰집 고방에 있는 목구

◆ 2연 : 최방등 제사에서 먼 조상들과 후손들이 교감하는 장면의 중심에 있는 목구

◆ 3연 : 먼 옛 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리를 메워주는 목구

◆ 4연 : 먼 과거와 현재, 먼 미래를 이어주는 목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백석의 <목구>는 식민지 말기의 민족성의 위기를 한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 그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시의 배경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제사란 자신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 준 조상들에 대한 후손들의 추모의 의식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온 제사는, 후손들로 하여금 온갖 시련 속에서도 핏줄을 지켜온 조상들의 의지와 슬기를 배우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련을 극복하고 꿋꿋하게 살아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대대로 이어져 온 집안의 제사는 바로 집안의 상징이며 그 자체로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제사가 끊긴다는 것은 그러한 조상들의 정신과 의지를 배반하는 것이며, 그것은 집안을 꿋꿋이 지켜온 조상들에 대한 크나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은 수원백씨 정주백촌이라는 한 성씨 집단을 형성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꿋꿋이 살아온 조상들과 유랑과 수난의 시대에 해체 위기에 있는 성씨 집단을 대비시켜 민족적 수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호랑이, 곰, 소 등 민족적 상징물로 비유되고 있는 수원백씨는 바로 우리 민족의 선조들을 나타내며, 그들이 시련을 딛고 물려준 수원백씨라는 성씨 집단은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난과 유랑의 시대를 살면서 민족 상실의 슬픔에 젖고 있는 화자는 선천적으로 꿋꿋하고 힘이 세지만 정이 많고 어질기 때문에 온갖 외침을 받으면서도 남을 침략할 줄 모르는 우리 조상들이 민족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했을 슬픔과 시련을 생각하고 조상들이 꿋꿋이 물려준 민족의 터전을 일제에 강탈당하고 나라없는 유랑민으로 떠도는 자신의 입장을 비교하여 조상들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백석의 시는 대부분 현실의 모순이나 갈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은 그가 식민지의 궁핍한 현실과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 시대를 유랑의 시대, 민족성 위기의 시대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의 시는 이러한 시대 인식을 바탕으로 나라와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민중들에게 상실된 민족적 삶과 민족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로 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백석의 시는 공동체적 삶에의 회귀 및 향수와 같은 과거 지향이 주를 이룬다. 그가 평안도 사투리를 질박하게 쓰고, 말투 또한 생활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도 이런 과거 지향 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의 그리움은 자연히 애련한 정서를 불러오고, 온전한 사람에의 복구를 염원하는 사회적 성격도 개입하게 된다.

이른바 서술시에는 지나친 사회 의식의 발로로 구호 차원의 주제 진술이 두드러진다. 사회의식적 시를 쓴 동시대의 부류 중 백석과 이용악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서정적 힘을 동반한 가운데 주제 의식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목구>도 위에서 말한 그의 시세계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목구>는 나무로 만든 제기를 말한다. 제기가 소재로 되는 순간 벌써 역사성을 띠게 된다. 윗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정도의 의미만이 아니라, 이 제기를 매개로 선대의 조상과 끊임없이 만나게 되고, 과거에 대한 흠모가 지속되며, 그것은 또 외경의 차원으로 승하될 수 있다. 제기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가족사의 면면한 흐름의 중심에 놓이는 소재이다. 가족사가 상징적으로 확대되면 민족사가 된다. 가족사는 민족사의 축소판이다.

이 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토속어의 사용이다. 그것은 생활어를 여과없이 씀으로써 진솔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효과를 거둔다. 지금은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시어 하나하나에 손때처럼 묻어 있다. 그리고 운율면에서는 산문율이 주조를 이루면서도 반복과 연쇄에 의한 외형적 율조가 드러나 독특한 율동감을 자아낸다. 이것 또한 생활어의 어법을 그대로 차용한 결과이다. 정제된 시어나 문장이 아닌 그저 주고받는 일상어처럼 소박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점에서 생활적 미감은 돋보이고 있다.

 

1연은 광 속에 보관된 '목구'를 유니크하게 그린다. 그 '목구'는 5대나 이어져 오면서, 집안의 살림살이들과 함께 해 온 것이다. 함께 등장하는 도구들도 토속성을 가미한다. 데석(제석)님은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신령이다. 백석의 시에는 샤머니즘적 세계도 중심을 이루는데, 여기에도 그것이 드러난다.

2연은 광에서 나와 제사상에 올려진 뒤의 '목구'의 모습을 노래한다. 민속적 정경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3연에서 전개될 '목구'의 의미화'를 위한 예비를 하고 있다.

3연에서는 '목구'의 의미를 노래한다. 귀신과 사람, 즉 죽은 조상과 살아 있는 후손과의 거리를 메우는 존재로 의미화한다. 조상을 그리워하는 후손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그리는 모더니즘적 성격이 보인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의 메울 수 없는 아픔을 잔잔한 슬픔으로 형상화한다.

4연은 3연의 심화이다. 목구는 나와 조상을 매개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의 후손과 조상의 아득한 거리를 메우며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지속성을 바탕에 둔 인식의 발로이다.

 

 ● 더 읽을거리

백석이 주로 시작 활동을 한 것은 1935년 이후 해방이 되기까지이며, 이 시기는 우리가 일제 말기라고 지칭하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기 중의 하나에 속한다. 1930년대 들어와서 일제는 문화정책을 전환하여 우리나라를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만들기 위한 전쟁기지화 정책을 수행,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식량 · 인적 자원을 강탈해간다. 이로 말미암아 민중의 궁핍은 극에 달하고 1920년대 이래 증가 추세에 있던 유랑민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 마을 전체가 황폐화되는 곳이 적지 않았으며 오천년 동안 간직해 온 민족의 공동체적 삶과 풍속도 해체되는 위기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대륙 침략을 위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개된 이민 정책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여기에 일제말기에 가해진 모국어 사용금지, 신사참배 강요, 창씨개명 등 일련의 황국신민화 정책은 나라를 빼앗은 데에서 나아가 우리의 민족성마저 빼앗기 위한 책략으로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악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 시대는 유랑의 시대이며 민족성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백석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식민지 정책이나 식민지 궁핍화 현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을의 유화>, <목구> 등은 그가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을의 유화>는 가혹한 식민지 수탈로 인해 마을 전체가 공동화되어 가는 현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어느 마을에 병든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양아들 부처가 빌어다주는 음식으로 그날 그날을 연명해 나간다. 그러나 궁핍을 견디지 못한 양아들 부부마저 야반도주해 버리고 그들은 스스로 빌어먹지 않으면 안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이 깊어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노부부는 어서 빨리 죽음이 자신들을 데려가주기만 소망하며 기다리게 된다. 그들의 유일한 소원은 죽어서 누더기와 쥐가 되는 것인데, 누더기는 추위를 , 쥐는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식민지의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해도 모든 사람이 고향을 등지고 마을을 떠난 뒤 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비극적인 식민지 현실을 보여주는 글이다.

극심한 수탈로 인한 궁핍 때문에 온 마을이 고향을 등지고, 또 가난 때문에 자식이 부모까지 버리고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노부부마저 굶어죽음으로써 마을 전체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을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에 그리 드문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죽어서 누더기와 쥐가 되게 해달라는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식민지 수탈의 가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존 자체마저 문제가 되는 극한적인 수탈과 궁핍 속에서 마을을 등지고 떠도는 유랑의 시대에 대대로 이어온 민족의 공동체적 삶과 민족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지고 그것은 곧 민족성의 위기로 이어졌을 것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더구나 일제 말기에 강요된 민족말살정책은 그러한 위기를 더욱 가중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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