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 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사리 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설어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사슴>(1936)-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토속적, 공동체적, 감각적, 회화적

특성

① 반복적 표현을 통해 주제를 강조함.

② 1연과 2연이 대구를 이루며 대상을 묘사하다가 3연에서 그에 대한 정서를 드러내며 결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음.

③ 방언의 사용으로 향토적 정감을 잘 드러냄.

④ 회상을 통해 시상을 전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새끼오리 → 새끼줄, '오리'는 '올'의 평안 방언

* 갓신창 → 가죽신의 밑창

* 개니 빠디 → 개의 이빨

* 너울쪽 → 널빤지쪽

* 짗 → 깃

* 재당 → 재종

* 문장늙은이 → 한 문중에서 제일 위인 사람

* 갖사둔 → 새 사돈

 

주제모닥불을 통해 본 공동체 의식과 평등 의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보잘것없는 것들이 타는 모닥불

◆ 2연 : 모닥불을 쬐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

◆ 3연 : 모닥불과 관련된 할아버지의 슬픈 사연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된 시로 1연과 2연은 열거법을 표현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1연에서는 모닥불 속에서 타고 있는 사물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일상생활에 쓸모가 없는 무가치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도 함게 모이면 모닥불의 불길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1연은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 또는 공동체에 필요한 화합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 2연에서는 그 모닥불을 쬐는 사람들과 짐승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는 덕 높은 집안 어른인 재당도 있고, 처음 과거 시험에 붙은 초시도 있고, 마을의 늙은이나 어린아이, 심지어 개와 강아지도 있다. 이들은 모두 모닥불의 온기를 쬐고 있는 평등한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2연은 소외되는 자가 없는 공동체, 또는 누구나 평등하게 온기를 주는 공동체의 미덕에 대해 노래하는 듯하다. / 반면에 3연은 이 같은 열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의 두 연과 구분된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앞의 두 연과 3연은 구분된다. 앞의 두 연이 눈앞의 모닥불과 관련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에 반해 3연은 할아버지의 어릴 적 사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모두가 동등하게 모닥불을 쬐고 있는 평화로운 현재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고아 소년의 슬픈 사연이란 불행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 등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거리와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시인은 화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연결하여 본다면, 이 시 또한 '모닥불'이란 소재를 활용하여 공동체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모닥불이 화합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 이면에는 할아버지의 서러운 삶 같은 개인의 슬픈 역사도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백석 시의 특징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그런 이야기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일상적인 언어를 과감하게 시에 사용한 점이 백석다운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시는 가장 하찮은 것들이 피워내는 따뜻한 모닥불가에 모여 있는 사람, 심지어는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여 불을 쬐는 광경을 묘사함으로써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하나됨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그 모닥불을 무지의 슬픈 역사에 비유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온 역경, 그러나 그 곁에 모두 모여 끈질기게 살아온 정겨운 삶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 더 읽을거리

이런 말과 말본새가 곧 우리 민족의 마음 씀씀이었거늘, 지푸라기 가랑잎 나무 막대는 물론 머리카락 개털 헌신짝도 모두모두 분간없이 타오르는 모닥불. 그런 모닥불을 사람 짐승 높낮이 없이 둥글게 어우러져 따스하게 쬐는 정겨운 마당. 그런 정경이 우리네 마음이고 삶이고 역사였거늘. 일제하 나라를 빼앗겨 더 추웠을 북방 시인이 순우리말 토속어 구분 없이 모아다 늘어놓고 모닥불을 피우며 민족의 얼 지피고 있네. 남북은 물론 가진 자 못 가진 자 남녀노소 갖가지로 갈려 험악한 지금 우리네 이 마당도 모닥불 대동굿 펼칠 날 어서 왔으면. 이념이나 당위보다 한참 윗길인 민족의 정겨운 얼로.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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