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 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서울의 애수>(199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애상적, 관조적, 성찰적

특성

① 감정을 절제한 차분한 목소리

② 관념적 정서를 구체적 사물로 나타냄.

③ '기다림', '희망'과 같은 관념적 이미지를 '눈사람'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투영함.

④ 시각, 청각, 촉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겨울 밤거리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⑤ '-네', '-며', '-위하여' 등의 반복과 '슬픔', '사람', '희망'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통해 대중적인 친화력을 높이고 공감을 이끌어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 2행 → 불투명하고 암울한 현실 상황 강조(대구법)

* 눈사람 → 순수한 꿈과 희망의 표상

*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

*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 암울한 현실을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 →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을 뜻함.(청각적 심상)

*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 설상가상의 상황

* 함박눈 → 민중을 더욱더 힘겹게 하는 세상

* 사랑할 수 없는 것을 ~ 용서하기 위하여

   → 화자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사랑과 용서임을 알게 함.

      삶의 부정적인 측면까지 포용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 눈사람을 기다리며 ~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 희망적이고 관용적인 태도

*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 노래에 담긴 희망과 염원이 사람들의 앞길을 열어주고 위로해 줌.

*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 화자의 희망적인 태도

*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래 →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부부

* 이 겨울 밤 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 중의적 의미

       ① 눈을 많이 맞아 눈사람처럼 된 부부 ②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맹인 가수 부부 ③ 맹인 가수 부부가 희망의 상징이 됨.

* 눈사람 → 맹인 가수 부부는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눈사람'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세상의 절망을 구원하는 상황에 대한 감각적 표상이다. 맹인 부부의 간절한 기다림은 기다림의 대상이 기다림의 주체가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는 통해 그 절실함과 아름다움이 완성되고 있다.

 

제재 : 부부 맹인 가수

주제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갈망, 희망을 잃지 않는 민중의 삶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눈 내리는 밤 길을 잃은 맹인 부부 가수

◆ 3~11행 : 사랑과 관용의 노래를 부르는 맹인 부부 가수

◆ 12~16행 : 아름답고 즐거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

◆ 17~21행 : 눈사람이 된 맹인 부부 가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가난하고 추운 삶의 한가운데 있는 민중의 고통과 눈물이 희망과 기다림으로 아름답게 변주되는 모습을 그린 노래이다. 맹인 부부 가수는 거리의 군중들의 사랑을 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눈은 이들의 머리 위로 자꾸 쌓여만 간다. 앞으로 갈 길은 멀고 그 길의 방향마저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따뜻함과 관용과 화해의 눈빛을 읽어 낸다. 함박눈에 덮인 맹인 가수는 어느새 희망의 상징인 눈사람이 되어 거리에 서 있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그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결국은 '화해'와 '용서', '사랑'임을 노래한다. 눈 오는 추운 밤에 앞 못 보는 (그래서 내면 깊이까지 볼 수 있는) 맹인 부부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는 눈발을 뚫고 길이 되어 앞질러가 결국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는데, 이러한 비극적 아이러니의 과정을 통해 정호승은 우리 시대의 슬픔과 그 슬픔이 기다림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완성하는 궁극적 희망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시는 '맹인 부부'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시에서 눈(眼)이 있되 보지 못하는 한계상황은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조건을 뜻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 미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雪)이 나려 어두워서(정치적 암흑기) 길을 잃었네(미래에 대한 시야 상실)' 의 속뜻은 이러한 것이다. 하지만 맹인 부부 가수는 노래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암흑기에 내리는 '눈(雪)'으로 눈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뜻은 시인이 현실과 한몸으로 뒹굴며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미래가 안 보여도 미래를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더라도 감내하고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이 시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 서민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따뜻한 시선

정호승은 따뜻함의 시인, 서민의 시인으로 불린다. 정호승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특히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시를 써 왔다. 1970~1980년대에 들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심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농촌 농민들이나 도시 노동자들은 발전해 가는 사회와 함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정호승은 이러한 착취적 사회 구조에 분노하고 삶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를 바탕으로 시를 썼다. 이러한 경향의 시들로는 '수선화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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