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내려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 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시집<마음의 수수밭>-

 

해           설

[개관 정리]

특성

① 어둠(고뇌하는 화자)과 밝음(평정심의 회복)의 이미지를 대비하여 주제의식을 드러냄.

② 감각적 표현이 돋보임(저녁만큼 저문 것,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내 맘속 보리밭)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

 

제재 : 화자의 마음 = 수수밭

주제 : 깨달음을 통해 이룬 마음의 평온

[시상의 흐름(짜임)]

◆ 1~7행 : 어수선하고 암울한 마음 상태

◆ 8~13행 : 깊은 절망 속에서 산을 발견함.

◆ 14~16행 : 산을 오르며 제정신이 듦.

◆ 17~22행 : 새로운 깨달음과 마음의 정화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화자의 마음을 수수밭에 비유하여, 고뇌에서 깨달음,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는 일련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현실의 고뇌로 암울해하던 화자는 푸른 것들의 부추김을 받고 산을 오르면서 막막함과 혼돈을 넘어 문득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게 된다.

'저녁만큼 저문 것'은 수수밭을 지나는 화자의 어수선한 마음이다. 저녁 무렵의 개밥바라기별(샛별=금성)은 화자에게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해 준다. 논둑길 너머 보리밭을 보는 화자는 자신이 힘겹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떠올린다. 수수밭을 지나는 지금도 지난 과거처럼 바람이 화자를 때리고 화자의 삶은 암처럼 절망적이다. 그러다 문득 화자는 푸른 산과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푸른 산과 하늘이 화자의 어깨를 치고 막막함을 떨쳐 버리라고 부추기고, 목탁새(까막딱다구리)가 목탁 소리처럼 화자의 정신을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은 죽음의 길일 것이다. 살아서는 그 길을 만들 수 없으므로 푸른 산에 오르며 화자는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 환해진 수수밭은 절망을 넘어 회복한 삶의 의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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