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노래

                                                                              - 오세영 -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 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벼랑의 꿈>(199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전통적, 허무적, 동양적, 자연친화적

표현 : 독백적 어조, 수미상관의 구성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과 허무주의를 배경으로 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산자락 덮고 ~ 또 어쩌겠느냐.

     → 수사의문문(설의법)을 통해 동양적 허무와 달관의 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이 산이 아닐 수도 있고 산이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은 일상적인 언어나 세속의 논리를 초월한 것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불교적 화두를 모티프로 함.

    * 아침마다 우짖던 ~ 온 데 없다.

          → 대구를 통해 절대 고독의 공간인 산사와 화자의 쓸쓸한 내면 환기

              '부재'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고독감을 강조함.

    *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 길 : 인위적인 세계

              산 : 화자가 도달한 공간으로 고독을 확인하는 공간이자 인간세계와 단절된 공간

    * 오늘은 ~ 홍시 하나 떨 뿐인데

          → 흰색과 붉은 색의 시각적 대비

              빈 하늘 빈 가지(모든 것이 떠나 버린 외로운 고독의 공간)

              홍시(홀로 존재하는 화자의 모습 - 객관적 상관물)

    * 어제는 온종일 난을 치고 /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 자연의 질서에 동화된 삶을 실천하는 화자의 모습으로, 무위자연의 태도를 드러냄.

    * 산이 산인들 또 / 어쩌겠느냐 → 변형된 수미상관식 구성으로, 절대고독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동양적인 허무 의식과 달관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시상을 완결짓고 있다. 무리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 그대로 살아간다는 무위자연적 태도와 관련된다.

 

제재 : 산

주제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합일된 삶의 추구

[시상의 흐름(짜임)]

◆ 1~5행 : 동양적 허무와 달관의 경지

◆ 6~11행 : 적막한 산사의 풍경

◆ 12~17행 : 무위자연의 경지(절대 고독과 허무의 공간인 산사의 풍경)

◆ 18 ~ 끝 : 동양적 허무의식과 달관의 경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합일된 삶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산은 고독하고 외로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이 곳에서 홀로 난을 치고 물소리를 가까이 하며 정신적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 함의되어 있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 시에 드러난 '동양적인 허무의식'과 '무위자연의 자연관'은 물질만능사상과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부정성을 극복하고 생명의식을 회복하기 위해 시인이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오세영 시인이 찾은 산 혹은 산문이란 선적(禪的) 초월의 세계 혹은 종교적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문턱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적 인식론과 전통적인 체념의 정서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작품이 바로 <겨울노래>이다.

 

■ 더 읽을거리

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된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山是山 水是水)"라는 유명한 법어(法語)를 남긴 적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사유방식을 지닌 시인 오세영은 시집 <벼랑의 끝>에서 존재에 대한 사유와 생에 대한 탐구를 담은 시를 많이 썼다. '나와 너', '지상과 하늘', '인간과 자연', '산과 물' 등의 대립과 분열이 인간의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나를 버림으로써 그러한 분열과 대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들은 상식적인 눈으로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과 세계의 본질에 도달하려고 한다. 사물과 세계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시인들의 노력은 항상 기존 언어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언어의 창조로 이어진다. "산의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는 실체의 직시와 그 의미에 대한 회의를 거쳐, "빈 하늘 빈 가지엔 / 홍시 하나 떨 뿐인데"라는 도교적인 무위 사상과 "산이 산인들 또 / 어쩌겠느냐."라는 동양적인 허무의식을 결합시키고 있다. 즉,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넘어선 조화와 합일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갑신년 새해에는 제발 또 제발,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 스스로를 화홰와 원융의 세상이 되기를 빌어 본다. / 신배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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