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

                                                         -  김동환 -
                                                       

 

 

                                      제 1 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어 놓고

    밤새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재(山材)실이 벌부(筏夫) 떼 소리언만.

     

       [3]

    마지막 가는 병자의 부르짖음 같은

    애처로운 바람 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失色)하여 숨죽일 때

    이 처녀만은 강도 채 못건넌 채 얻어맞는 사내 일이라고

    문빗탈을 쓰러 안고 흑흑 느껴 가며 운다- 

 

 

 

    겨울에도 한 삼동(三冬),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어름짱 끄는 소리언만.

     

                 -<국경의 밤>(192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사적, 낭만적, 애국적, 민요적, 향토적

표현 : 정서나 감각보다는 사건 위주의 작품

              시행의 도치, 과도한 직유적 표현

 

◆ 주제 : 일제 강점기 국경 부근 마을의 풍물과 정서(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 사랑과 비애)

[시상의 전개 (짜임)] : 3부 72절의 서사시

제1부(1장∼27장) : 두만강 유역인 국경지방, 때는 설날이 가까운 어느 겨울. 통제품의 하나인 소금을 밀수출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아낙네의 근심어린 대사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그날 저녁 이 마을에는 의문의 청년이 출현, 위기 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뜻밖에도 청년은 아낙네의 문간에 나타나 주인을 찾는다.

제2부(28장∼57장) : 아낙네와 청년의 8년 전 과거가 묘사된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 소꼽 친구였고, 자라서는 남몰래 좋아하게 된 사이었다. 그러나 재가승(在家僧)인 여진족 후예인 순이는 여진족 이외의 피를 지닌 사람에게는 시집갈 수 없다는 인습과 율법에 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순이를 빼앗긴 소년은 10일 후 마을에서 행방을 감춘다.

제3부(58장∼72장) : 옛날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어 옛마을에 돌아왔다. 그리고 남의 아내가 된 지난날의 소녀를 찾아 그 집 문을 두드린다. 3부는 이 두 남녀의 대화로 시작된다. 청년은 다시 옛날의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지만 여인은 남편에 대한 의리와 제한된 자기 운명을 들어 완강히 거절한다. 그때, 밀수출을 나간 여인의 남편이 마적떼의 총에 맞아 시체가 되어 나타나게 되고, 남편의 시체를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여 묻는다. 두만강 건너 편 중국 군영에서는 때마침 점심 때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린다.

 

  ※ 인용한 부분

[1장] : 밀수출 떠난 남편의 안전을 염려하는 아내의 초조한 마음

[2장] : 벌부(벌목꾼)들의 소리에도 불안해하는 아낙네

[3장] : 얼음장 꺼지는 소리에도 괴로워하는 아낙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일제하의 민족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은 아니지만, 인물과 분위기와 사건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배경을 보면 국경지대 두만강 유역으로 되어 있는데, 항상 긴장되고 불안한 국경지대, 우리 민족의 자유와 억압,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두만강이라는 상황설정이 그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물에서 보면 재가승의 딸이라는 순이의 처지가 또한 흥미의 요소가 된다. 옛날 함경도 북쪽에 평화롭게 살고 있던 여진족들은 윤관의 여진 정벌로 천민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여러 세대를 살아왔다. 이들은 머리를 깎은 탓에 재가승이라 불렸는데 순이는 바로 재가승의 딸이었다. 이처럼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종족의 후예라는 특이한 신분을 지니고 있는 순이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며 평범하고 단순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진족의 후예인 순이는 공포와 수난을 벗어날 길이 없는 원색적인 삶에 터를 두고 있으며, 그의 사랑조차 자유가 박탈된 타의에 의하여 맹종해야 했으며, 멸망당한 종족의 오랜 운명이 그의 삶을 지배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이것은 일제의 강압 밑에 억눌린 '민족적인 비애'를 표출한 눈물겨운 겨레의 이야기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한 상황이 아닐까.

 

[쟝르 규정에 대해]

작가 스스로 서사시로 규정한 이래 최근까지 이 작품은 거의 타성적으로 서사시라고 공인되어 오다가 근래에 이르러 장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우선 영웅도 없고, 서사적 탐색도 보이지 않고, 청중 앞에서 낭송되지 않는 등을 이유삼아 서사시 부정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한 극시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시집 <국경의 밤>에는 실험적 극시 형태의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 이 작품에서도 특히 3부는 거의 전부가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인이 동경 유학 시절 그리이스 비극에 심취하기도 했으며, 작품 전면에 흐르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는 인간의 모티프가 희랍 비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반면, 시인의 기질과 실험정신, 시대적 조건, 지방색 등에 의해 장르의 특성은 얼마든지 변용될 수 있으며, 더구나 서양의 잣대로 국문학 작품을 재단해 버리는 것은 한국 현실에서 피해야 할 태도인 만큼, 한국적 근대 서사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또 한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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