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조지훈-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사상계>(1961)-

 

해           설

[개관 정리]

주제삶과 죽음에 대한 초월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꿈의 문을 열고 들어간 시인이 그 곳에서 만나게 된 '마을'과 '바다'라는 두 개의 시적 공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초월 의지를 담담한 어조의 이야기체 형식을 빌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은 맷방석만한 꽃숭어리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꽃밭으로, 그 곳에선 수천 마리의 낮닭이 갑자기 깃을 치며 울고 있다. 이에 반해 바다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는 공간이며, 그 배에는 오색 비단 돛폭과 큰 북이 달려 있는 한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부는 수염 흰 노인도 있다.

마을은 커다란 꽃송이의 해바라기와 깃을 치며 우는 낮닭의 밝은 이미지로 나타나는 삶의 현실적 세계를 표상하지만, 바다는 꽃상여를 싣고 떠났다는 진술을 통해 그 곳이 죽음의 초월적 세계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상반된 두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파아란 바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제시된 '산 모롱잇길'에 의해 상호 연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세계는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삶으로 통하는 것이다. 시상의 개폐 기능을 하는 1연과 8연을 '문을 열고 / 들어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와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라는 구절로 배치시킨 시인의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에서의 '문'은 시인을 아름다운 꿈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환상의 문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를 투시할 수 있는 실존의 문이다. 이렇게 시인은 소멸과 허무의 일반적인 죽음 의식을 버리고 삶의 연장으로서의 죽음, 또는 삶과 환치할 수 있는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생과 사를 초월하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 '오마이 뉴스'에서

"어느 날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장자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불현듯 꿈에서 깨었다. 깨고 보니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자가 아닌가? 장자는 생각에 잠겼다. 아까 꿈에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나는 내가 장자인지 몰랐다. 지금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진정 나인가? 내가 나비였던지? 아니면 나비가 지금 나로 변한 것인지?"

그렇다!  만물이 순환을 거듭하는 이치라면 지금의 나는 나비일지도, 아니면 나비가 나로 변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같은 것이 이 시의 백미로 아래 '문(門)'이다.

문을 열고 / 들어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중략>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문'은 여기서 시상을 열고 닫는 그런 개폐 기능(over lap)에, 의미론적으로는 실존의 문이다. 잠자리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꿈속의 세계인 그 문(門) 안도 현실과 다름 없는 일상의 현상. 그같이 문을 닫고 나와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 그래서,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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