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덤불

                                                        -  신석정 -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보는 이 하늘에

그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보리라.

 

                        -<신문학>(1946)-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상징적, 독백적, 비판적, 관조적, 참여적

■ 표현

* 현실비판적, 참여적, 회고적 어조

* 밝음과 어둠의 대립적 이미지

* 반복에 의한 리듬감(3연)

* 상징과 직유법

 

■ 시어의 의미

   * 태양 → 빛, 밝음, 광명, 희망, 생명력, 절대가치, 영원성 등의 원형적 상징

                 장차 이루어야 할 조국의 밝은 미래(조국의 광복)를 의미함.

                 민족 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

   *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 '부재의 존재론'으로,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논리이다.(역설적 표현)

              '태양을 등진 곳'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함.

   *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 식민지 시대의 황량하고 음울한 상황 속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던 민족적 체험

   * 가슴을 쥐어 뜯지 않았느냐?

          → 반복을 통해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절박하고 깊었던가를 표현함.

   * 영영 잃어 버린 벗 → 목숨을 잃어버린 벗

   * 멀리 떠나 버린 벗 → 조국 해방을 위한 노력을 포기한 벗

   * 몸을 팔아 버린 벗 → 생계나 목숨을 위해 노동이나 협력을 통해 일제에 동조한 사람

   * 맘을 팔아 버린 벗 → 변절자, 전향자

   *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 이 시가 외재적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 문장으로, 광복 직후에 씌어졌음을 알 수 있음.

   *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 광복이 되었음에도 좌우익의 이념 갈등 등으로 겪어야만 했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나타낸 부분

             '달'은 주로 '태양'과 대립적 이미지나 상징으로 쓰이는데, 달은 변화, 냉혹, 시간의 추이, 계절의

                  섭리 등의 의미를 띠는 반면, 태양은 불변, 절대 가치, 강렬함, 따뜻함 등으로 상징됨.

   * 오는 봄 → 완전하고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지는 때

   *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 해방공간 속에서도 태양(꽃덤불)에 온전히 안기지도 못한 상황임.

             꽃덤불에 아늑히 안기는 것은 당대 우리 민족 전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세계를 형상화한 것임.

         

■ 주제 이상적이고 새로운 민족 공동체 건설에 대한 염원과 기대

[시상의 전개(짜임)]

■ 1연 : 일제 식민치하에서의 독립 투쟁

■ 2연 :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쓴 고통 회상

■ 3연 : 독립 투쟁의 과정에서 죽고, 유랑하고, 변절·전향한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 4연 : 일제 36년의 끝남

■ 5연 : 해방공간에서, 새로운 국가(사회) 건설에 대한 기대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1946년 해방 기념 시집에 수록된 시로서, 신석정 특유의 낙원 회귀의식은 여전하지만, 해방 기념 축시이기에 신석정 특유의 신화적 서정성보다는 시의 뼈대만이 강조된 느낌이 짙다.  광복의 시대에 태양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꽃덤불로 덮인 낙원을 기다리는 시적 상상력은 다소 단순하면서도 설명적인 느낌을 준다.

광복을 빛의 회복이라 할 때, 그 빛의 강렬함을 가장 극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는 단어는 '태양'일 것이다. 태양을 다시 갖는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를 산 사람들의 내면에 깊숙이 타오르는 강렬한 염원이기도 했다. 태양이 없는 일제 암흑기와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광복이 항상 대립적인 이미지로 제시되는 것은 태양이 주는 빛, 광명, 희망, 생명력 때문이다. '꽃덤불'은 이 태양 빛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빛의 '난폭한' 세례를 의미하면서 희망의 덩어리가 우리 민족에게 한꺼번에 무더기로 주어졌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강렬하고 역동적인 생명의식을 느끼게 한다.

특이하게도 시인은 아직 완전하고 실질적인 광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광복의 감격과 새 나라 건설에 대한 희망에 들떠 이성을 잃고 당대 현실을 맹목적으로 인식했던 다른 시인들에 비해, 신석정의 이 시는 심정적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새 나라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 냉철함이 진정한 광복에 대한 희망을 더 강력하고 내밀하게 드러내는 힘이 되고 있다.

 

[ 더 읽을 거리 ]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식민지 시대의 고통스러웠던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어둠'과 '광명'이라는 대립적 이미지를 주축으로 하여 조국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조국을 상실한 식민지 시대는 '태양'이 없는 암흑기였으므로 '태양'은 곧 조국의 해방을 상징한다.

1연은 일제 치하에서의 지하 독립 투쟁을 개괄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2연은 식민지의 어두운 시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이라도 그것이 밤인 한, 어둠이고 암흑일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조국 해방을 갈망하였던 것이다. '헐어진 성터'는 국권 상실의 비극을 은유하고 있으며, 반복법으로 국권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심경을 강조하고 있다. 3연은 애국 투사의 죽음과 방랑, 변절과 전향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반복적 운율로 토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들의 죽음과 방랑에 가슴 아파하는 동시에, 일제에 굴복하거나 타협한 이들에 대해선 뜨거운 민족애로 감싸 주려는 시인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4연에서는 마침내 오랜 고통 끝에 잃어버린 태양을 되찾았지만, 새로운 민족국가를 아직 수립하지 못한 채, 좌·우익의 이념 갈등으로 인해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찬' 혼란스러운 정국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 5연에서 시인은 근심스런 시선으로 불안한 시대 상황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혼란과 갈등을 모두 극복한 후 이루어 낼 하나의 조화로운 민족국가 건설에의 벅찬 기대감을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 꽃덤불에 아늑히 안기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태양을 오롯이 되찾는 것이라고 시인은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신석정은 이 시에서 보듯, 우익 진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민족사적 과제에 부응하는 시를 창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거 '시문학파' 시절의 긴장도(緊張度)와 서정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미덕을 보여 주고 있는 바, 이 외에도 <삼대>, <움직이는 네 초상화> 등 다수의 작품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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