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  이 상  -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 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 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카톨릭청년>(1936)-

 

해        설

[시상의 전개 방식(구성)]

   * 1행 : 자아와 관계없이 돌아가는 가정 생활  

   * 2행 : 생활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강박관념과 자책의 표현  

   * 3행 :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력감  

   * 4행 : 제웅처럼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아있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자조의식  

   * 5행 :  

   * 6행 : 날카롭고 냉엄한 이미지를 통한 현실의 비정함과 갈등  

   * 7,8행 : 가난에 시달리는 가정 형편과 집을 저당잡히는 현실을 가정하는 개인적 고뇌  

   * 9행 : 생활이 없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절박한 심정

 

◆ 표현 : 이 상의 시는 이 작품을 포함해서 대부분 행과 연의 구분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적 배려로서 문장에 대한 전통적 기법이나 의식, 심지어는 인생에 대한 상식적인 질서까지도 거부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 주제 : 일상적 삶에의 동경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화자는 철저한 독백으로 자의식의 내면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오히려 이 작품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자의식적 관념을 드러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의 삶의 일상에 대한 사색을 통해 고립되고 폐쇄된 생활 부재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내면적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모습은 곧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분열 현상을, 화자의 자의식 내부에서 경험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이다.

[참고 사항]

◆ 이 상의 제웅의식 → 이 상은 태어나자마자 조부의 뜻에 의해, 아들이 없는 백부의 큰아들 겸 김씨 가문의종손이라는 막중한 기대와 억압 속에서 유년을 보내게 되면서, 문벌과 가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조부와 백부의 봉건적 유교 윤리에 갇히고 만다. '내 뼈붙이', '내 살붙이', '내 핏줄'이라고 무작정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못다 한 자신들의 꿈을 쏟아 부으려는 조상들에게 이 상은 혐오와 거부와 증오를 느낀다. 그리고 그 조상들은 죽어 땅에 묻혀서까지도 문벌의 꿈이라는 요구와 명령을 멈추지 않고 시인의 자유를 억누른다. 또한 그는 백부를 '준엄하기 짝이 없는 풍모'로 묘사하고, 백모는 '나로 하여금 증오를 일으키게 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조부와 백부와 친부의 세속적인 기대를 한몸에 받고 쓰러져 가는 가문의 막중한 계승자로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을 '제웅'과 동일시하고 있다. 제웅이란 앓는 사람이나 살이 낀 사람을 위하여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집밖에 내다 버린 주물인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문벌의 제웅, 유교적 가족관념이 빚어 낸 가문의 제물이나 희생자로 자신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른 바 '제웅 의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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