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서

                                                                              -  김용호  -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날개>(1956)-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관조적, 감각적, 서정적

표현

* 관용적 표현 ( 맵고도 쓴 시간,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과 참신한 표현(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이 조화를 이룸.

* 1연의 시행 배열이 주는 효과 → 1행의 긴 시행은 '길'의 지속성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며, 2,3행의 짧은 시행은 기나긴 길의 어느 한 지점임을 공간감 있게 살림.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길 → 삶의 도정을 상징.

* 주막 → 인간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잠정적 공간

              세월의 한 매듭이 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길의 출발 지점이 되기도 하는 곳.

* 이 빠진 낡은 사발 → 소박한 인정의 매개체이자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는 대상임.

                                 화자의 현실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소재

                                 인생의 보편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해주는 중심적 형상

* 나도 입술을 댄다 → 화자가 보편적인 삶의 법칙에 수긍하고 순응하는 태도

* 정처럼 옮아오는

   → 화자가 마시고 있는 낡은 사발을 사용했던 서민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애정을 가짐.

* 막걸리 → 서민적. 서민들의 삶의 모습

* 대대로 슬픈 노정이 집산하고

  → 주막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인생의 슬픈 사연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곤 함.

* 위엄있는 송덕비 → 일시적인 삶의 영광

                               서민들의 삶과는 대조적인 모습

* 맵고도 쓴 시간 → 냉엄한 역사의 시간, 삶의 고달픔

* 세월이여 →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허망함, 송덕비의 하찮음에 대한 비웃음

* 소금보다는 짜다는 인생 → 삶의 고달픔을 감각적으로 표현

* 노을 비친 길 → 인생의 황혼

* 가늘고 긴 길 → 소멸감을 주어 인생의 길이 종국을 향해 하는 고단한 애환의 여정임을 나타냄.

* 8연 → 인생 일반의 문제로 보는 데서 삶에 대한 세계관이 표명되고 있으며, 인생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잔잔한 관조를 통해 드러나고 있음.

 

주제 삶의 애환.  인생에 대한 관조.  주막에 얽힌 서민들의 애환

주막 = 덧없는 삶의 공간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주막의 위치 소개(길과 주막의 제시)

◆ 2연 : 주막의 서민적 정취(삶의 끝없는 연속)

◆ 3연 :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동병상련)

◆ 4연 :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주막(인생의 본질 제시)

◆ 5연 : 탄식

◆ 6연 : 주막을 나서는 화자의 모습(인생 무상)

◆ 7연 : 나그네같은 인생길의 끝없는 여정

◆ 8연 : 계속될 서민들의 소박한 인정과 삶의 여정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집 <날개>에 수록된 김용호의 시이다. 이 시는 인생을 나그네길에 비유하여, 나그네가 거쳐가는 주막의 소박한 분위기와 막걸리의 털털한 맛이 어우러져 순박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잔잔히 느끼게 해 주는 감상적인 서정시이다. 누구나 거쳐가는 주막을 배경으로 소탈하고 인정에 넘치는 서정이 물씬 풍긴다. 시인은 인생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불변적인 것도 아니라는 다소 체념적이고 회의적인 입장에서 이 시를 쓰고 있다.

주막에서 막걸리를 벗삼아 나그네 길을 떠나는 서민들의 애환과 인정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한편 옛날에는 위엄이 있었을 낡고 먼지 낀 송덕비를 다소 냉소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며, 송덕비의 영광도 '맵고도 쓴 시간' 앞에서는 허망한 것이어서 어차피 인생이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이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인생관을 말하면, 인생은 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의 법칙에 순응하고, 그런 고단함 속에서도 연민의 정을 갖는 소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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