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鐘)

                                                                              -  설정식  -

                                                       

 

 

 

만(萬) 생령(生靈)  신음을

어드메 간직하였기

너는 항상 돌아앉아

밤을 지키고 새우느냐.

 

무거히 드리운 침묵이여

네 존엄을 뉘 깨트리드뇨

어느 권력이 네 등을 두드려

목메인 오열(嗚咽)을 자아내드뇨.

 

권력이어든 차라리 살을 앗으라

영어(囹圄)에 물러진 살이어든

아 권력이어든 아깝지도 않을 살을 저미라.

 

자유는 그림자보다는 크드뇨.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유실물(遺失物)이드뇨.

한아름 공허(空虛)여

아 우리는 무엇을 어루만지느뇨.

 

그러나 무거히 드리운 인종(忍從)이여

동혈(洞穴)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민족의 감내(堪耐)를 살게 하라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니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리라.

그러나 내 간 뒤에도 신음은 들리리니

 

 

 

네 파루(破漏)를 소리없이 치라.

 

     - <문학>창간호(1946. 7.) -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예언자적, 상징적, 명령적

표현 : 의인화('종'을 '너'로 표현함)

              명령법을 씀으로써 대상과 화자 사이의 거리를 없앰.)

              대상(종)에 대한 시적인 형상화는 다소 소홀히 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의 종 → 일만 생명의 신음을 간직한 채 돌아앉아 밤을 지키고 새우는 존재.

    * 밤 → 부정적 시대 상황 상징

    * 권력

        → 종의 존엄을 깨뜨려 종으로 하여금 '목메인 오열'의 소리를 내게하는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됨.

    * 3연 → 권력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담김.

    * 그림자, 영원한 역사의 유실물, 한아름 공허 

        → 자유가 요원한 존재임을 탄식하는 허무감이 표출된   표현

    * 무거히 드리운 인종이여 →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이 담겨 있음.

    * 5연 → 인내하다 보면 언젠가는 종이 존엄한 실체를 회복하듯이, '스스로 울리는 자유'의 실체도

                      회복되리라는 신념과 의지의 표현임.

    * 스스로 울리는 자유 → 원관념 : 종소리

    * 파루 → 파루(罷漏)의 오식인 듯 함.  

                  통행금지 해제의 뜻으로 새벽 오경에 큰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

 

주제자유와 민족의 소중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종의 존재 의미에 대한 시적 인식(서장)

◆ 2연 ~ 3연 : 종의 존엄을 깨뜨리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비판

◆ 4연 ~ 5연 : 종의 진정한 존재와 존엄을 회복하는 실체로의 부활 추구

◆ 6연 : 종의 의미와 실체가 영원하리라는 것에 대한 염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현실에 대한 처절한 좌절감과 허무감 속에서도 민족의 영원성과 '스스로 울리는 자유'에의 확신을 종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해방공간에 처한 현실을 대하는 한 지식인의 시대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유와 민족은 영원한 것인데 그 자유 획득을 위하여 민족의 인종을 깊숙히 감춘 것이  종소리다. 어둠을 지키는 것과 권력의 폭력에 신음하는 것이 종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민족을 가장 최고의 위치에 올려 놓고 관념에 의해 모든 현실적 문제를 해결, 수정,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인데,   이는 해방 당시의 분위기와 같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은 많건 적건 민족 관념을 가장 강력하고 신성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속성은 식민지 시대에는 은밀하게 표출되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한꺼번에 분출하게 된다. 그러나 이 표면화 과정은 구체적인 민중이나 사회현실을 매개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추상성, 관념성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런 관념적인 열정은 현실의 어려움에 흔히 좌절되기 쉬운 것이었으나 시인은 이를, 민족을 지상명제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극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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