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월간문학>(198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회상적, 소망적

특성

① 1연과 7연에 비슷한 구절을 반복하여 시의 주제를 강조함.

② 계절적 배경을 통해 시적 화자의 정서를 심화시킴.

③ 고백적 어조를 사용함.

④ 이별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킴.

⑤ 사물(찔레)을 통해 화자의 사랑의 아픔을 승화시킴.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 → 계절적 배경으로 '봄'을 가리킴.

* 그리운 가슴 ~ 찔레로 서 있고 싶다. → '찔레'는 화자의 분신으로, 과거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냄.

* 사랑하던 그 사람 →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려 봄.

* 조금만 더 다가서면 → 끝내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담김.

* 꽃 → 아름다운 사랑의 완성

* 오늘 → 지난날의 아픈 사랑을 포용한 현재

* 흰 찔레꽃 → 사랑의 아픔을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시킨 모습

* 먼 여행 → 화자의 방황과 고통

*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연해진 화자의 마음과 태도

*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 고통스러웠던 사랑을 회상함.

* 아픔이 출렁거려 → 추상적 관념(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함.

* 늘 말을 잃어 갔다. → 사랑의 고통으로 인한 내적 고뇌를 형상화함.

* 예쁘고 뾰족한 가시 → 사랑의 아픔까지 포용한 사랑, 또는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 무성한 사랑 →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

 

제재 : 찔레꽃 → 찔레꽃은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아픔을 상징한다. 가시를 품고 있지만 찔레꽃은 봄날 흰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사랑의 승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뾰족한 가시는 이별의 아픔까지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화자 : 과거에 아픈 사랑을 경험한 사람

주제사랑과 아픔의 승화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찔레가 되고 싶은 소망

◆ 2~3연 : 과거의 아픈 사랑의 승화에 대한 소망

◆ 4~5연 : 과거의 아픈 사랑 회상

◆ 6~7연 : 아픔까지 포용한 사랑에 대한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찔레꽃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의 아픔과 그것의 승화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하는 동안의 아픔까지 아름다운 사랑으로 간직하고 있는 화자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찔레'로 형상화하고 있다.

● <찔레>는 깊은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자아낸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악행과 수난에 대한 기억이고, 그 기억에서 분노와 노여움이 돋아난다. 수난에 갇힌 실존, 그래서 찢기고 금 간 마음은 어떻게 치유되는가. 자기 구제와 치유는 다름 아닌 자기 안에서 응축된 힘으로 이루어진다. <찔레>는 자기구제와 치유의 노래다. '찔레'는 꽃만이 아니라 '가시'도 함께 갖고 있다. '가시'는 슬픔의 몸에서 돋아난 저항의 징표다. 수난에 대응하는 분노와 노여움일 터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시의 화자는 가시와 함께 꽃을 피우고 섰는 '찔레'에게 제 모습을 겹쳐본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 꽃 속에 매달고"라는 구절을 보자면, 시의 화자는 아픔을 먹고 아픔 속에서 꽃과 가시를 함께 피워냈다. "노스탤지어야말로 우리의 무기다."라고 한 것은 누구였을까. 고향을 잃은 자의 슬픔은 때로 무기가 되는 법이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이럴 때 울음은 짝없이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지려는, 혹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안타까운 몸짓이다. 울음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존재 증명이다. "우는 날이 많았다"는 것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자의 심장을 핥아봐라, 슬픔의 짠맛이 날 것이다. 우는 일은 사랑으로 빚어지는 슬픔을 씻기 위한 씻김굿이다.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 무성한 사랑으로" 서려면 이 씻김굿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픔이 출렁거리던 날들, 그토록 많이 울던 날들도 다 가고, 이제 '찔레'는 무성한 사랑을 꽃피운다. 마침내 '찔레'는 잘-있음의 현실태요, 자기 동일성을 회복한 온전한 삶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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