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뻐꾹새

                                                                              -송수권-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중

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로 흘러들어

남해 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산문에 기대어>(197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전통적, 비극적, 감각적

특성

① 2, 3, 4연의 첫행은 시상 전개에 통일감을 부여함.

② 감각적 이미지(청각적)를 통해 시적 대상의 운동감을 나타냄.

③ 각 연의 마지막 행의 단정적인 표현은 깨달음의 의미를 강조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여러 마리의 뻐꾸기 → 한과 설움의 이미지. 한과 설움을 지닌 원혼이 뻐꾸기로 환생한다는 설화

*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석삼년이 세 번 거듭됨. 27년)

* 길뜬 → 길이 덜 든

*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 알았다.

    → 수많은 설움과 한의 세월의 겪은 다음에야 한과 설움의 근원은 한 가지임을 깨달음.

* 지리산 하 → 지리산 아래

* 한 봉우리에 ~ 또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 여러 마리의 뻐꾹새 소리가 실상 한 마리의 뻐꾹새라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한과 설움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함을 의미함.

* 연연한 → 이어져서 길게 뻗은

*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 오랜 시간 설움과 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한 후에

* 한 소리 없는 강 → 한과 설움을 이겨내고 정화한 이후에 열리는 강

* 섬진강 섬진강 → 한과 설움을 정화한 의연한 강의 이미지

* 그 힘센 물줄기 → 강인한 삶, 능동적 삶의 태도

*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 → 공감각적 심상(울음을 빛깔로 표현함)

* 세석 → 지리산 정상 아래 부근의 지명.  철쭉꽃으로 유명한 세석평전

* 철쭉꽃 → 뻐꾹새가 한과 설움의 눈물을 섬진강물로 다 흘려 보낸 뒤에야 피어난 꽃

 

주제우리 민족 내면에 존재하는 한(恨)과 힘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한 마리 뻐꾹새의 여러 울음

◆ 2연 : 하나의 뻐꾹새 울음이 여러 뻐꾹새의 울음이 됨.

◆ 3연 : 오랜 울음 끝에 강으로 이어지는 울음

◆ 4연 : 강을 흘러 남해의 여러 섬을 밀어 올리는 울음

◆ 5연 : 울음이 다 태워 버린 세석 철쭉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송수권 시인. 그는 1975년, 그것도 35세 늦깎이로 시인이 되었다. 평론가 이어령 선생에 의해서였다. 원고지가 없어 갱지에 써서 투고한 까닭에 시인 지망생이 원고지 쓸 줄도 모른다고 판단한 편집위원이 휴지통에 처박은 것이다. 게다가 주소도 여관방이었으니, 이때 주간인 이 씨가 우연히 휴지통 속 수북한 원고뭉치를 발견, 옥고 <산문에 기대어>를 찾아낸다. 당선자를 찾느라 무려 1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한때 충장로에서 만나는 거지에게 동전을 매번 던져준 적이 있었다. 자비심의 발로가 아니라,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느끼는 일종의 보상심리에서였다. 그는 거지를 향해 외친다. '하루의 배고픔을 원망하지 말라. 너의 깔자리가 낮다고 투정하지 말라. 이 세상에 살아 있어 너는 빛을 만들고 있지 않느냐!'(동아일보, 91. 06. 17) 거지로부터 받은 이 구원의식은 현재까지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나 비극적 체험을 가장 잘 나타내줄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 중 하나가 바로 '접동새'와 '뻐꾹새'다. 접동새의 한스런 슬픔의 정서가 김소월의 '접동새'에 나타났다면, 이 시는 뻐꾹새에서 환기되는 그러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1연과 2연은 여러 산봉우리에서 울어대던 뻐꾹새 소리를 처음에는 여러 마리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 울음인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 소리는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긴 한 마리의 울음이었다는 사실 확인다. 3~5연으로 오면 이미지의 공간 구조가 확대된다. 즉 산에서 울던 뻐꾹새의 울음이 3연과 4연에 와서는 드디어 눈물이 되어 섬진강을 이루어 남해로 흘러들고, 5연에서는 그 눈물이 피눈물이 되어 철쭉꽃밭을 벌겋게 다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시가 절창인 것은 민족의 원형적 심상을 이미지의 전이와 변용이란 시적 장치를 원용해 비극감을 압축 · 극대화시켜줌과 동시에 민족사(6 · 25)의 비극적 공간이라는 사회학적 상상력까지 자극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문체적 특징은 서술체로 되어 있고, 시적 화자인 '나'가 보고 느낀 점을 '알아 냈다', '알았다', '보았다' 등의 서술어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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