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 문병란 -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심상>(1976)-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전통적, 설화적, 참여적, 애상적

표현 : 강렬한 호소의 어조와 반복을 통한 의미의 강조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견우(화자)가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표현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은하수 → 만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사랑의 깊이와 성숙을 나타내는 소재

    * 노둣돌 → 하마석.  말을 타거나 말에서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 오작교 → 사랑의 가교

    *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재회에 대한 절실한 소망

    * 선 채로 기다리기엔 기다림의 고통

    * 그대 몇 번이고 ~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긴 시간 속의 기다림과 뒤척임

    *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구체화한 표현

    *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 → 직녀가 처한 현실, 죽음과도 같은 시련과 고통의 환경

    * 유방, 처녀막, 머리털

          → 소중한 육체적 · 정신적 가치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만나기 위해서는 버릴 수도 있는 것. 

    * 유방도 빼앗기고 ~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 직녀 없이는 세계와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직녀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 불가능한 상황

    * 가슴을 딛고 건너가 서로의 사랑에 대한 믿음

    * 오작교가 없어도 ~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단호한 어조를 통해 화자의 의지를 점층적으로 드러냄.

 

만남의 갈망, 상실의 위기에 놓인 소중한 대상을 되찾기를 갈망, 통일을 갈망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견우와 직녀 설화를 변용하여 노래한 서정시이다. 견우가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 작품은 비극적인 이별을 당한 현실을 드러내면서 반복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 작품에 대한 시인의 말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 염원을 읊은 서정시는 70년대 중반쯤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1981년 창비사에서 간행된 『땅의 연가』라는 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불리워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이후 검거망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청탁에 의해 같이 활동하던 작곡가 김형성 씨가 통일 염원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고, 그 노래는 미주와 유럽 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불리워지게 되었다. 내가 84년 제3세계 예술제가 열리는 서독 베를린에 들렀다가 거기서 뜻있는 해외동포로부터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으로 부른 테잎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노래가 국내에서도 불리워지기를 바랐고, 당시 전남 사대 영문과를 나왔으나 딴따라 기질이 있어 방송계로 진출한 애제자 오창규 군에게 건네어 주었다. 오창규는 그것을 다시 역시 교단을 버리고 통기타의 반려자가 된 노래꾼 박문옥에게 건네었다. 해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곡풍인데다 국내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판단, 일면 작곡에 대한 야심도 있었던지 그 동일 가사에다 다른 곡을 붙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민중가요 <직녀에게>는 당시 <바위섬>이라는 노래로 한창 방송가의 인기를 타고 있던 신선한 목소리의 대학생 가수 김원중을 만나 음반으로 취입되었다.

그 노래는 서서이 반향을 일으켜 <바위섬>의 여운을 이어받는 듯했으나, 작사자인 내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운운하는 운동권 재야 세력 탓인지 방송가의 전파에서 조금씩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김원중의 열창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현장에서 민중가수의 상징적 애창곡이 되어 이 시대의 대표적 통일 염원의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이 땅의 통일을 앞당겨올 것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규는 온 누리에 메아리칠 것이다.

 

■ 문병란(文炳蘭 : 1935 ~ )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출생.  1960년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63년 『현대문학』에 「가로수」,「밤의 호흡」,「꽃밭」등이 추천되어 등단함.  순천고, 광주일고, 조선대에서 교직 역임.  시집으로는 『문병란 시집』(1971), 『정당성』(1973), 『죽순밭에서』(1977), 『땅의 연가』(1981), 『무등산』(1986) 등이 있다.

그는 1973년 시집 『정당성』을 내놓은 이후 시적 노선이 더욱 분명해졌다. 당시의 유신 독재 정권과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사명이며 존재 이유로 생각한 것이다. 그는 양심적인 시인으로서 홀연히 저항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정신은 1974년 『창작과 비평』겨울호에 「겨울 산촌」,「고무신」,「살인자」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반체제 저항 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민중 지향이라는 뚜렷한 시적 목표와 방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시어는 민중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시인 이시영의 말대로 그의 시어는 "별다른 지식 없이도 한번 읽으면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언어"이고, 그것은 "민중의 생생한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강한 언어다. 이러한 '쉬운 시 쓰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문학의 기법이며, 지식인을 위한 모더니즘 시를 극복하는 그의 문학적 방법이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그의 민중시는 1970년대에 내놓은 시집 『죽순밭에서』(1977), 시문집『호롱불의 역사』(1978), 농민시집『벼들의 속삭임』(1980)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중『죽순밭에서』는 1979년에 도서출판 한마당에서 중간되었는데, 정부는 이 시집이 "외설스럽고 민족 정신을 부정했으며 일본 국기를 모독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다. 저자 문병란은 이에 대해 25쪽에 걸쳐 그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판금 조치를 철회하라는 항의서를 당국에 제출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때가 유신정권 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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