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박용하-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

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

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

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 나무 · 파도 ·

두꺼비 · 호랑이 · 표범 · 돌고래 · 청개구리 · 콩

새 · 사탕단풍나무 · 바람꽃 · 무지개 · 우렁이 · 가

재 · 반딧불이…… 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

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

 

           -<영혼의 북쪽>(1999)-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관조적, 상징적, 생명적

특성

①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봄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함.

② 시적 화자가 달이라는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독특한 발상을 기반으로 함.

③ 시어와 시행을 우편엽서 모양으로 배열하여 시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달 호텔 → '지구 여관'과 대조적 공간

* 우편엽서 → 지구가 '조그만 존재'임을 비유한 말

*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 도치법이 사용된 부분으로 지구를 나뭇잎에 비유하여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연약하기 짝이 없는 ~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 지구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드러난 부분으로, 지구가 우주의 생명의 근원이며 희망이긴 하지만, 인간의 오만으로 인해 쉽게 멸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연약하다는 특징으로 나타내고 있다.

* 지구 여관에 ~ 사람들이 만원이다. → 지구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는 뜻으로, 인간이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만의 지구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 방이 없어 ~ 많기도 하다. →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인해 소멸되는 생명체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 달 호텔 테라스에서 ~ 한 잎 같다. → 인간이 지구를 독점하고 있음을 비판한 말로, 인간에게 유용한 것들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 크기가 한정되어 있어 인간에게 유용한 것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지구의 모습

 

제재 : 지구

주제지구에서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의 공생 추구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우편엽서 같은 지구

◆ 3 ~ 5행 : 우주의 생명의 근원 지구

◆ 5 ~ 9행 : 지구에서 사라지는 생명체들

◆ 9 ~11행 : 인간만 살 수 있는 지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달 호텔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참신한 상상력을 통해 지구의 현재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으로, 지구 위에서 생(生)과 사(死)를 함께 하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지구가 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은하계의 오아시스이고, 우주의 샘물인 생명의 지구를 인간이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동식물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때 특이한 것은 '파도'와 '무지개'이다. '파도'와 '무지개'는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라 그저 지구 환경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시인의 메시지는 보다 강렬해진다. 지구 위의 생물 뿐만 아니라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에 경의를 표하며, 이러한 존재들을 통해 지구가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시인은 지구 그 자체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대한 시인의 또 다른 관점은 '달 호텔'과 '지구 여관'이라는 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개발하지 않은 달은 호텔이고,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킨 지구는 여관이라는 대조적 표현에서 인류 문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 '우편엽서' 모양의 시행 배치

화자는 달에서 지구를 보면서, 지구를 '우편엽서'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시어와 시행의 배치를 통해 시 전체를 하나의 우편엽서로 만들고 있다. 우편엽서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할 말을 적어서 보내는 매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첫 번째 특징과 관련지어 생각한다면, 이 시는 화자가 지구, 특히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이 방이 없어 떠나는 모습을 통해 인간 문명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과 관련지었을 때, 지구의 크기가 실제로 우편엽서처럼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구를 우편엽서의 작은 크기에 비유한 것은 인간들이 모든 땅을 독차지하고 다른 생명체들을 파괴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인간에게 모든 땅을 뺏겨 버린 생명체들에게 지구는 우편엽서보다도 작을 것이다.

 

◆ 산문시의 리듬

'지구'는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드는 시다. '달=호텔', '지구=우편엽서'라는 상상력은 이 산문시를 지탱하는 뼈대를 이룬다. 나아가 각종 동식물들을 열거해 나가는 수법은 적절한 열거의 종류와 숫자로 지구의 생명체들을 전체적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낳는다. 여기서 이 열거는 산문시의 리듬까지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박용하 시인의 지구 사랑

'지구'는 내 시의 근원이며 내 삶의 철학이다. 내 인생이 나의 종교라면 내 인생이 펼쳐지는 지구 역시 나의 종교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여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 나무 · 파도 · 두꺼비 · 호랑이 · 표범 ……' 왜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들, 바다, 바람, 심지어 무지개조차도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인간이 지구의 오염과 절망을 생산하는 동물이 아니라 희망이 되는 날이 올까. 이제 인간은 물과 불과 공기와 대지의 문명을 섬겨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 문제는 인간'이라면 답도 인간이다. 한 행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힘을 지닌 인류는 지금 어디로 자신의 문명을 움직여야 할지 숙고할 때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