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

                                                                              -이장욱-

                                                       

 

 

 

모든 것은 등 뒤에 있다.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

거리의 나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만 몸을 떨었다.

곧 네거리에 서 있는 거대한 주유소를 지나야

할 테지만 나는 아무래도 기나긴 페이브먼트,

이 낯선 거리의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

천천히 붉은 구름이 하늘을 흐르기 시작했으며

흐릿한 전화 부스에는 이미 술 취한 사내들

어디론가 가망 없는 통화를 날리며 한량없었으므로

나는 길 끝에 눈을 둔 채 오 분 후의 세계를

다만 생각할 수 있을 뿐. 어느 단단한 담 안쪽

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믿을 수 없는 고음역의

레퀴엠, 등 뒤를 따라오는 몇 개의 어두운

그림자, 쉽게 부러지는 이 거리의

난간들,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주 오래된 멜로디를

떠올렸으나 네거리의 저 거대한 주유소,

그리고 붉은 불빛의 편의점 앞에서

결국 뒤돌아보게 되리라, 결국 뒤돌아

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눈빛을 지니게 될는지

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떻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는지

다만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

 

 

 

 

등 뒤의 세계.

 

        -<내 잠 속이 모래 산>(200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염세적, 서사적, 회고적

특성

① 의도적인 행간 걸침을 통해 시상을 집중시키고, 시의 분위기를 형성함.

② 미술 작품을 시작의 모티프로 삼고, 원작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함.

③ 회화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상을 전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든 것은 등 뒤에 있다.

   → 화자가 경험해 온 것이지만 뒤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움.

* 거리의 나무들은 ~ 몸을 떨었다. → 거리의 가로수들이 생명력 없이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현대 도시 사회의 반생명성과 적막함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시의 분위기와 정서를 형성한다.

* 페이브먼트 → 포장한 차로나 인도 등을 일컫는 말. 포장된 길바닥

* 이 낯선 거리의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 → 현대 도시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음습한 불안을 나타냄

* 붉은 구름 → 핏빛을 연상하게 하는 감각적 표현

* 흐릿한 전화 부스 ~ 날리며 한량없었으므로 → 현대 도시인들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제정신을 지니고 살 수 없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 가망 없는 통화 → 희망과가능성이 부재한 현대사회

* 나는 길 끝에 눈을 둔 채 오 분 후의 세계를 / 다만 생각할 수 있었을 뿐. →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의 속성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의 일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이러한 현대 도시 사회의 속성은 도시인들을 불안과 공포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

* 고음역 →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가 낼 수 있는 높은 음의 넓이

* 레퀴엠 →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 죽음을 연상시키는 공포와 어둠의 이미지

*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주 오래된 멜로디를 / 떠올렸으나 → 레퀴엠이 전해 주는 현대 사회의 어둡고 두려운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려는 화자의 노력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현대사회가 주는 공포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소용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 붉은 불빛의 편의점 → 핏빛을 연상케 하는 감각적 표현

* 두 손으로 ~ 비명을 지를는지 → 현대 사회가 주는 공포와 불안을 거부하려는 시적 화자의 행위가 모두 부질없는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몇 개의 그림자 → 불안과 공포의 인식이 내재된 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함.

* 등 뒤의 세계 → 불안과 공포로 뒤덮인 현대 도시 사회

 

제재 : 현대 도시 사회

주제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시적 화자의 두려움

◆ 2~3연 : 현대 도시 사회의 모습과 두려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뭉크의 '절규'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문학이 미술이라는 인접 영역의 예술과 밀접한 영향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뭉크의 '절규'에 표현된 당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시인과 시적 화자가 생활하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현대 도시 사회의 문명을 새롭게 제시하면서도, 그러한 세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이미지를 원작과 같이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화자의 '등 뒤의 세계'는 이미 시적 화자가 지나온 세계이며, 화자는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뒤돌아서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운 상황이다. 화자는 두 손으로 두 귀를 막으며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미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의식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 이 시에 드러난 행길이의 표현 방법과 효과 ◆

이 시에서는 현대 도시 문명을 여러 가지 제시하면서 의도적인 행간 걸침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의 대상을 제시하면서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다른 행에 배치하고, 피수식어로 시작된 새로운 행은 쉼표와 함께 도 다른 대상의 수식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 기교는 드러내려는 대상의 속성을 이전 행의 끝에 제시하여 휴지를 줌으로써 대상의 속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대상 자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아울러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나타내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연속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게 된다.

~ 믿을 수 없는 고음역의 / 레퀴엠, 등 뒤를 따라오는 몇 개의 어두운 / 그림자, 쉽게 부러지는 이 거리의 / 난간들, ~

 

◆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 ◆

이 시에서는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현대 도시 문명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여러 가지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감각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토앻 현대 도시 문명의 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리의 나무들

생명력이 없는 삭막함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

주유소, 페이브먼트

낯설고 불안함

붉은 구름, 붉은 불빛의 편의점

핏빛 이미지로 뒤덮인 불안과 공포

흐릿한 전화 부스, 술 취한 시내, 가망 없는 통화

혼탁한 사회와 희망의 부재

고음역의 레퀴엠

날카로운 죽음의 이미지

 

◆ 뭉크의 '절규'에 드러난 예술성 ◆

'절규', 다리 위에서 공포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의 인물은 바로 그 '절규'에 필사적으로 귀를 막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그는 그 무서운 소리를 피할 수 없다. 그 외침은, 실은 그 자신의 내부에서 솟구치고 있기 때문이다.

뭉크로부터 현대 회화는 '내면의 소리'를 반영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그림들은 모두 '외면'만을 그리는 데 그쳤다. 표현주의는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에까지 파급되는데,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잠재의식 밑바닥에 숨어 있는 본능적 감각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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