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

                                                                              -백석-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 동림 구십여 리 긴긴 하룻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학풍>(194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감각적, 향토적, 애상적

특성

① 산과 벌에서의 체험을 청각적으로 제시함.

② 평안도 사투리의 사용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벌배채 → 들 배추.  야생 배추의 방언

* 통이 지는 때 → 배추의 속이 실하게 찰 때.  산과 벌의 계절적 배경을 드러냄.

* 덜거기 → 늙은 장끼

* 물닭 → 뜸부깃과의 새

* 갈새 → 개개비. 휘파람샛과의 새

* 4연 → 대구를 통해 화자의 쓸쓸함을 극대화함.

* 정주 동림 → 백석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군 심천면의 마을. 화자가 경험한 구체적 공간

 

주제적막강산에서 느끼는 외로움

[시상의 흐름(짜임)]

◆ 1~3연 : 산과 벌에서 울리는 소리

◆ 4연 : 산 · 벌과 대비되는 나의 처지

◆ 5연 : 외로움으로 인한 탄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각 연이 3행으로 이루어진 정형화된 율격을 가진 이 시는 백석의 시로는 극히 예외적인 작품에 속한다. 마지막 연의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에서 '있노라'라는 감탄의 서술어와 의고적(옛것을 본뜸) 어조는 백석의 시 중에서 이 시에서만 구사되고 있다. 산에 있으나 들로 내려오나 사람 소리는 안 나고 온통 자연의 소리만이 들리는 세상은 화자에게 막막할 뿐이다. 그 속에 혼자 던져져 있는 화자의 적막감은 더 없이 커진다. 4연에서 바로 그런 외로움이 토로되고 있다. '들썩'과 '홀로'가 극적으로 대비되어, 온통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찬 세상 속에 놓인 화자의 외로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정주 동림 구십여 리'란 지명과 거리가 진술되어 화자가 놓여 있는 공간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행에서 토로되는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라는 탄식의 외침이 자연스럽고도 절절한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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