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차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산호림>(193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토속적, 사실적

특성

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방식

② 시적 상황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 태도를 보임.

③ 산골 마을의 풍정이 세세하게 묘사됨.

④ 산골 마을의 상징성 → 삶은 궁핍하지만 토속적 정경과 어우러져 정답고 따뜻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를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때, 산골 마을은 문명(일제)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 대추나 밤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만 추석을 쇨 수 있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상을 나타낸다.

*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 정확한 수치를 통해 농촌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 팔아야 될 물건이기 때문에 대추를 먹고 싶어하는 어린 딸에게 주지 못하는 상황을 통해 가난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의 보편적인 보채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동시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 '달'을 송편에 비유함으로써 추석의 분위기를 드러내며, 우리 나라의 토속적인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음력 열하룻 날의 달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 건너편 성황당 사 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 토속성이 느껴지는 표현

*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부모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막내딸과 인기척 소리에 달려나가는 삽살개의 정겨운 모습을 통해,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산골 마을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재 : 시골 장날

주제산골 마을의 토속적인 삶의 모습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모습

◆ 2연 : 장을 보고 돌아오는 저녁 모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추석을 맞이하는 어느 산골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토속적인 정경과 산골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시골 장날을 제재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는데, 1연에는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 추석을 쇠기 위해서는 대추나 밤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간다. 먹고 싶은 대추를 부모가 주지 않아서 우는 어린 딸의 모습은 가난한 생활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2연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저녁의 정경이 드러나 있다. 장에 간 부모님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싸릿문이나 성황당, 삽살개와 같은 토속적인 소재와 어우러져 정겨운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장을 보고 돌아오는 부모님을 어린 딸보다 먼저 삽살개가 달려나간다는 골계적이고도 애틋한 표현을 통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산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정경을 토속적인 정감으로 잘 살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정겹고 따뜻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노천명 시의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

신문학 초창기부터 1930년대까지 이렇다 할 여류 시인을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는 시점에서 전통적인 여류시의 맥락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한 시범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노천명의 시사적 의미를 짚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병적 징후의 한 가지인 자학과 허무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신념과 사상의 결핍에서 파생된 세계 인식의 협소함과 역사 의식의 부재, 즉 인생관의 성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라 할 것이다. 실상 친일 훼절과 친공 부역이라는 거듭되는 시행 착오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모순으로서의 인생, 고독과 비극으로서의 생의 본질을 끊임없이 응시하고 그것을 감내하려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당대 여류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 '장날'에 나타난 전형적 시골 풍경

이 작품에는 추석을 맞이하는 시골(산골) 마을의 풍경이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러한 시골 마을의 전형적 모습은, 대추나 밤을 팔아야 추석상을 차릴 수 있는 산골 마을의 가난한 형편, 이십 리와 열하룻장이라는 정확한 수치를 통해 환기되는 농촌 생활의 특수성, 음력 열하룻날 밤이기에 해가 지자 바로 떠오른 송편 같은 반달, 시골 마을 어귀 어디에나 있었던 성황당 사시나무, 고요한 밤길에 들리는 나귀 방울 소리와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등 농촌의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세세한 묘사가 토속적 정조를 지닌 시어(대추, 밤, 이십릿길, 열하룻장, 송편, 싸리문, 성황당, 나귀 방울, 삽살개)들과 어우러짐으로써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