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로 지어진 옷

                                                                              -나희덕-

                                                       

 

 

 

흰 나비가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간다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그 고요한 날갯짓에는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다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이니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저 사람

슬픔을 물리치는 힘 고요해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고요해

 

비를 건너가면서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사라진 손바닥>(200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의지적, 역설적

특성

① 시어의 대조를 통해 주제의식을 강조함.

② 역설과 도치법을 통해 의미를 강조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봄비를 건너간다 / 비를 맞으며 맞지 않으며

   →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적 의미를 부각함.

      의연하고 당당하게 시련을 이겨나가는 흰 나비의 모습

* 비 → 현실적 어려움이나 시련을 의미

* 그 고요한 날갯짓에는 / 보이지 않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어

   →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창작인의 고통

*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 → 현실적 어려움, 시련

* 몸을 태우고 남은 재 → 시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의 고통과 노력, 그것의 결과물

*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굴려 올리면서도 → 시 창작인으로서의 고통

* 저 사람 → 새로운 시적 대상, '흰 나비'와 동일시됨.

* 비를 건너가면서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 역설적 표현, 고통을 극복한 정신적 성숙을 의미함.

* 그는 남몰래 가졌을까 / 옷 한 벌, 흰 재로 지어진 → 도치법, 고난의 승화

 

주제현실을 이겨내고 참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모습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봄비 속을 날고 있는 흰 나비

◆ 2연 : 나비의 고요하지만 격렬한 날갯짓

◆ 3연 : 무거운 돌덩이를 굴려 올리지만 걸음이 가벼운 '저 사람'

◆ 4연 : 비를 건너가면서도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창작의 고통 속에서도 시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고요함'과 '격렬함', '무거움'과 '가벼움', '젖음'과 '마름'의 대비를 통해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형상화하였고, 아름다움을 향한 영혼의 비상을 '나비의 날갯짓'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흰 나비'의 모습을 통해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 내고 시를 창작해 내는 시인의 삶을 우회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 더 읽을거리

흰 재로 지어진 옷 한 벌을 남몰래 가진 사람은 비를 건너가면서도 마른 발자국을 남긴다. 소매도 걷지 않고 봄비를 건너가는 나비의 고요한 날갯짓 속에는 사실 얼마나 격렬한 삶의 욕망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날개를 둘러싼 고운 가루가 천 배나 무거운 빗방울을 퉁겨내면서 비를 맞으며 비를 맞지 않으며 가는 나비! 그 나비는 제 마음 몇 배의 돌을 굴리면서도 걸음이 가볍고 가벼운 사람과 같다. 봄비 건너는 나비처럼 무거운 슬픔을 물리치는 힘도 고요히 간직한 사람이다. 한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날개는 몸을 태우고 남은 재인 것처럼 그 사람도 이미 흰 재로 지어진 옷 한 벌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재 혹은 흰 재인데, 이건 삶의 허무나 혹은 어떤 큰 지혜를 가르키는 바, 그런 걸 소유한 사람은 역시 남보다 몇 배의 무거운 돌멩이를 굴리면서도 나비처럼 고요하고 가볍게 한 세상을 건널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빗속의 나비날개와 흰 재와 그것을 무욕의 사람과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고재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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