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시영 -

                                                       

 

 

 

밤이 깊어 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

잠시라도 잊었을 때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

 

이 밤이 길어 갈수록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우리가 가기를 멈췄을 때

혹은 가기를 포기했을 때

칼자욱을 딛고서 오는 그이의

아픈 발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대낮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현제의 찬 손일지라도

언젠가는 피가 돌아

고향의 논둑을 더듬는 다순 낫이 될지라도

오늘 조인 목을 뽑아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

 

               - <만월>(1976)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의지적, 적극적

표현 : 반복과 대구, 점층적 강조를 통해 화자의 태도와 의지를 강조함.

             '~불러야 한다', '가야 한다'와 같은 단정적 진술을 통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밤 → 암울한 현실

    * 우리 → 시적 화자, 개인의 문제가 집단의 문제를 다룬 작품임을 나타냄.

    * 그 이름→ 우리를 구원해 줄 대상, 동지애를 불태워야할 대상

    *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 / 잠시라도 잊었을 때

             → 현실에 안주하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안일한 모습

    * 채찍 아래서 → 외부의 현실적인 시련과 탄압

    * 뜨거운 소리 → 안일한 우리를 질타하는 준엄한 양심의 소리

    * 우리가 가기를 멈췄을 때 / 혹은 가기를 포기했을 때 → 의지를 잃은 나약한 모습

    * 칼자욱을 딛고서 오는 그이 → 고통을 극복하며 우리를 구원하러 오는 존재

    * 아픈 발소리 → 고통을 당하는 그의 처절한 음성

    * 형제의 찬 손 → 폭압적이고 비정한 현실

    * 언젠가는 피가 돌아 / 고향의 논둑을 더듬는 다순(따스한) 낫이 될지라도 → 평화로운 미래의 상황

    * 조인 목을 뽑아 → 억압적 현실을 뚫고

    *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한다. /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 부정적 현실을 극복하고 저항하기 위한 적극적 대응 자세

    * 그의 돌 → 그를 기리는 비석

    * 그의 장승 → 그를 수호하는 존재

    *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

            → 폭압적 현실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가 담긴 표현

 

화자 :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강인한 태도를 보임.

주제새로운 시대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우리

◆ 2연 : 누구에게로 가야 하는 우리

◆ 3연 :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로 가야 하는 당위성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밤'이라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로 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시적 화자를 개인이 아닌 '우리'로 설정하여 서로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개인적 소망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꽃>과 대조하여 감상할 때 더욱 그 시적 의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춘수의 <꽃>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주제의식으로 씌어진 시이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존재에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이시영의 <이름>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더욱더 동료애를 느끼고자 하는 주제의식에서 씌어진 시이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뜨거운 동료애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이름'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이다. 이에 비한다면 이시영의 <이름>은 현실적이고 저항적이며 정서적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이시영의 <이름>이 잘못된 현실과 그 고난 속에서 불리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잠시라도 잊었을 때 /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동지애를 조금만 상실하였을 경우에도 우리는 현실의 억압에서 울부짖으며 끌려간 동지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가 씌어진 1970년대 지식인들이 광폭한 유신 독재의 공포 정치 밑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갔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폭압적 현실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보호해 주는 일이란 어려우면서도 절실한 시대였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는 죽음까지도 생각한 각오이다. 폭압적 현실 속에 저항하고자 하는 존재의 처절한 외침, 그것이 이시영의 시 <이름>이 지니고 있는 현실성과 저항적 인간 정신이다.

(오선영: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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