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

                                                                              -  김현구  -

                                                       

 

 

     

    어젯밤

    불현듯 서해(西海)에 풍랑(風浪)이 일어

    오늘 아침

    천지가 온통 요란스럽습니다.

     

    하늘에 구름은

    한층 바삐 달음질치고

    수목(樹木)들이

    슬픈 몸짓으로 설레입니다.

     

    난데없는 소란에 황급한 꾀꼬리

    몸을 감추고

    숲 속 소스라쳐 깨인 벌레소리

    하늘에 가득 찹니다.

     

    아아 영혼의 슬픈 유랑(流浪)과

    조락(凋落)의 붉은 상장(喪章) 몸에 두르고

 

 

 

    가을이 산을 넘어

    찾아옵니다.

     

          -유고시집<현구시집>(1970)-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역동적, 서정적, 애상적

표현 : 역동적 심상

              형태적 리듬(각 연 2행의 '~고(어)', 4행의 '~ㅂ니다'의 규칙적인 통사 구문과 어미 처리)

              감각적 묘사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서해의 풍랑,   천지의 요란함, 구름, 수목, 꾀꼬리, 벌레소리

   → 여름이 절정에 달하고, 곧 가을이 오고 있음을 예고해주는 소재들.

* 영혼의 슬픈 유랑 → 가을의 이미지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서글픈 영혼

* 조락의 붉은 상장

  → 가을의 '단풍 든 나뭇잎'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가을을 맞이하면서 막바지 인생의 서글픔을 느낌.

 

주제가을(입추)의 정취와 삶의 허무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3연 : 여름의 열정이 극에 달한 모습(가을에 대한 예고)

◆ 4연 : 화자의 서정과 인식(주제 의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먼저, 가을을 예고하는 다양한 제재들을 선택하여 가을의 정취를 매우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즉, 1연에서는 '서해의 풍랑'과 '천지의 요란함'을 자연스럽게 접맥하여 여름이 절정에 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3연에서는 구름, 수목, 꾀꼬리, 벌레소리 등이 '달음질치고, 황급한, 소스라쳐 깨인" 등으로  표현됨으로써 역동감이 실감있게 전해지고 있다.

한, 이 시는 1연에서 3연까지는 입추(가을)의 정취를 환기하는 제재들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4연에서 화자의 서정과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가을의 정취를 환기시켜 주는 앞부분(1~3연)에서 주목해 볼 사항은, '불현듯, 달음질치고, 슬픈 몸짓,  황급한' 등의 시어들에서 느껴지는 시의 정조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가을의 충만함에 대한 설레임이 이 시의 주된 정조가 아니라, 세월의 빠름을 서글퍼 하는 화자의 인식이 주된 정조로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정조는 4연에서 보다 더 확실하게 형상화되고 있는데, 화자는 찾아오는 '가을'에서 조락해 가는 화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듯하다. 인생의 가을쯤에 해당하는 시인 자신의 인생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시에서의 가을은 화자에게 인생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제재이며, 그러한 쓸쓸한 감정에서 오는 삶의 회의와 허무를 일깨워주는 자신의 등가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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