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  유치환  -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 소냐.

 

머언 미개(未開)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愛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憎惡)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悔恨)인들 남길소냐.

 

                 -<문장>(1939)-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관념시. 주의시. 관념적, 의지적, 남성적

표현 

* 강렬한 시어 구사로 남성적이고 대결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감.

* 은유, 직유, 설의법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백일 → 시적 자아의 삶의 지표(시적 자아가 세상(삶)을 바라보는 인식의 근거)

                  진실, 자유, 정의가 있는 광명의 세계

    * 머언 미개적 유풍 → 옛날의 원시적 삶

    * 성신과 더불어 잠자고 → 원시적 삶의 모습 (열린세계를 향한 지향의지)

    *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 대자연의 섭리대로 살고( " )

    * 나의 생명 →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

                                  (도덕적 판단 기준에 의한 가치있는 생명)

    * 생명에 속한 것 → 나의 삶에 관여하는 모든 것(아름다운 자연, 암흑기의 불쌍한 혈육과 겨레 등)

    * 애련 → 어리고 약한 것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 애련에 빠지는 것이 치욕이 되는 이유

         → 애련은 비장하고 강한 의지를 발휘하는 데 장애요소가 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감정이다. 내가 애련의 감정에 빠지면 나는 약해지고 원수는 강해져서 결국 내가 원수에게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치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즉, 애련의 감정에 빠지는 것은 원수에 대한 증오심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치욕이라고 말하고 있다.(시인의 비장한 의지가 엿보임)

    * 원수 → 제도적 부조리인 '사회악', 반생명적인 것, 일제,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 등

    * 가장 옳은 증오 → 공명정대하게 적개심으로 무장한 증오

                                 미워할 자를 당연히 미워하는 '정의의 칼날'

                                 부정한 세력에 대한 증오이므로.

    * 해바라기 → 평생동안 '백일'을 추구하며 살아온 시적 자아의 모습

    * 즘생처럼 → 무참하게

    *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에 → 거룩한 '일월'을 추구하며 살아온 나의 삶이기에.

    * 무슨 회환인들 남길쏘냐 → 죽음에 직면해서도 삶의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김.

 

주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의지

              불의와 부정한 세력에 대한 저항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백일을 향한 출발(생명에 대한 확신)

◆ 2∼3연 : 건강하고 원초적인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

◆ 4연 : 원수에 대한 강한 증오(현실비판의식)

◆ 5∼6연 : 불의에 대항하는 대결의지(윤리적 대결자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첫 시집 {청마 시초}에 수록되어 <생명의 서>와 더불어 세칭 '생명파'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한 작품이다. 그가 일제 압제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북만주로 탈출하기 1년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의 치열한 생명 의식과 사회악에 대한 준열한 윤리 의식을 결합하여, 생명파 시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망명살이 어디에고 '백일(白日)'로 표상된 밝고 정의로운 세상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화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 곳 별과 비바람의 대자연 속에서 우주 섭리를 근심하면서 살아가는 미개적 유풍의 원시적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지(知)'·'정(情)'·'의(意)'를 열렬히 사랑하되 사랑과 연민에는 빠지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다짐한다. 왜냐하면, 애련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원시적 삶을 사는 자연인에게는 부끄러움이고, 이 애련을 초극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성신'·'비와 바람'·'일월' 등의 원시적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한편, 화자는 민족의 원수인 일제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민족 배반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증오밖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증오는 불의와 부정한 세력에 대한 것이므로 당연히 '옳은 증오'임을 굳게 믿고 있다. 설령 그 곳에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결코 원수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으며, 어느 뜻하지 아니한 때,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은 결코 버릴 수 없기에 어떠한 후회나 한탄도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준다.

 불의(不義)와 악에 대한 타협 없는 증오와 대결 의지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을 추구하는 데서 애상을 거부하는 유치환 시의 의지적 특성이 잘 나타난다. 작품에 담긴 윤리의식의 준열(峻烈)함이 시어와 어조의 장중, 엄숙함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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