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  박봉우  -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조선일보>(1956)-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현실 참여적, 산문적, 상징적, 예언자적

표현 : 수미상관식 구성

              의문형 종결로 안타까움을 영탄적으로 표출함.

              사투리 사용으로 삶과 밀착된 정서를 대변함.

              5연으로 된 산문시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과 5연 →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숨죽이고 있는 듯 양극으로 대치되어 있는 상태와 그 위기감.

                          분단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연

                          '산'은 국토의 대유이며, '얼굴'은 우리 민족을 의미함.   '마주 향한 산'은 국토 분단의

                                         적대적 상황을 의미함.

    * 천둥같은 화산 → 전쟁 암시

    * 요런 자세 → 아무런 대처 방안도 없이 속수무책인 상황.

                          휴전으로 어정쩡한 평화가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상황.

    * 꽃 → 실제의 꽃이 아닌 삼엄하게 정지되어 있는 '상황의 꽃'.

               극악한 상황이 꽃으로 환치된 역설적 표현

               '꽃'은 연약한 이미지를 주며, 짧은 순간 피었다 결국 지고 마는 것으로, 일시적 평화 상태나

                           그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 놓인 한시적인 삶을 뜻하는 소재임.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살한 풍경,

                    별들이 차지한 하늘을 끝끝내 하나인데,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 시대적 배경(휴전이 점차 고착화되어 가면서 남북 사이의 단절이 견고해지는 불안과 절망과 비애의

                        시기)을 암시해 주는 구절들임

    * 고구려같은 정신 → 만주에서 한강까지 드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고구려의 기상과 개척 정신

    * 신라 같은 이야기 → 삼국 통일에 관한 많은 사연

    *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 나무 한 그루 없 는 비무장 지대의 허허로운 벌판.

                     우리를 지켜 줄 울타리 하나 없이 모두 알몸을 드러낸 채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

    * 정맥이 끊어진 채 → 남한과 북한이 분단되어 단절이 된 채.

    * 야위어 가는 이야기

           → 전쟁의 유혈이 멈춘 이후, 휴전이 아닌 분단으로 점차 이행되어 가는 답답한 현실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를

                      고착화하고 당연시하는 현실 풍토를 안타까워하는 자아의 절망감을 엿보게 하는 구절임.

    *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

           → 조용한 듯 하지만 언젠가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야 말 '전운(戰雲)'이 감도는 상황을 의미함.

    * 모진 겨우살이 → 한국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는 것을 뜻함.

 

주제 :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자세

            민족 화해와 분단 극복에 대한 열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남북 분단으로 대립된 역사적 상황

◆ 2연 : 팽팽한 긴장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북의 현실

◆ 3연 : 분단으로 인한 민족사의 쇠퇴

◆ 4연 : 동족 상잔에 대한 불안감

◆ 5연 : 분단으로 대립된 역사적 상황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1956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으로, 당시 시인들이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를 천착하거나 현실과 유리된 자연이나 내면세계를 노래할 때, 민족 분단 현실에 주목한 작품으로 민족문학의 밑거름이 되고 '분단 극복 문학' 또는 '통일문학'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보여 준 작품이다.

박봉우는 '휴전선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평가는 분단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임을 말해 준다. 당시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 상황 속에서도 한쪽 이데올로기에 편향되지 않고, 분단 문제를 고도의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해 낸 박봉우의 이러한 선지적 인식은, 당시로서는 그리고 지금의 평가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거나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한 1950년대 시와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는 것, 분단 문제를 시적 상징 속에 고도로 매개화했다는 것,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로 제시될 것임을 드러낸 것 등이 박봉우의 시가 갖는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6.25의 참상과 휴전, 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실감나게 하는 현실 고발적인 시다. 6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열악함 속에서도 시인의 강인한 의지를 표출하여, 민족의 대화와 화해만이 공존의 길이라는 예언자적이고 선지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적인 억압을 뛰어넘으려는 시인의 용기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를 선취한 시인의 자유롭고 활달한 상상력이다. 이 시의 생명력은 바로 현재적 가치를 그대로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green37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