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花蛇)

                                                                              -  서정주  -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 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 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시인부락>(1936)-

 

해               설

[개관정리]

성격 : 낭만적, 주정적, 감각적, 원색적

표현

* 감각적 표현이 전면을 지배하고, 악마주의적 기법과 반복법, 점층법 등이 구사됨.

* 비속어의 사용 등으로 감각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이 많음.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아름다운 배암 → 뱀의 관능미(본능적 차원)

* 커다란 슬픔 → 뱀의 슬픈 운명

* 징그러운 몸뚱아리 → 인류의 영원한 증오의 대상(도덕적 차원)

*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 사변의 정신세계는 제거된 채 육체적 열정만 꿈틀거리는

* 푸른 하늘 → 뱀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신 하나님의 표상, 절대적인 선

*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 원한에 찬 반항의 몸짓을 충동질함

* 돌팔매를 쏘면서 ~ 저 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 죄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도덕적 행위와 뱀의 관능미에 유혹당하는 본능적 행위가 동시에 나타남

*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 지식을 탈피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관조의식. 즉 기계문명과 지식의 합리화에 의해 빼앗긴 사물을 다시 되찾자는 것.

* 스며라 배암 → 뱀의 관능적 아름다움이 그대로 내 몸 속으로, 순네에게로 전이되기를 바람.

 

주제 :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애욕과 동물적 본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뱀의 이중성

◆ 2연 : 꽃대님같은 뱀의 아름다움

◆ 3연 : 뱀의 독기를 발산한 것을 충동질(인간의 악마적 근성)

◆ 4연 : 뱀에 대한 증오와 본능적 충동

◆ 5연 : 뱀을 통한 인간의 본능과 도덕간의 갈등

◆ 6연 : 뱀에 대한 인간의 강한 욕구

◆ 7연 : 인간의 관능적 욕망

◆ 8연 : 순네의 아름다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 양승국의 <한국 현대시 400선>에서

이 시는 첫 시집 {화사집}의 표제시로서 미당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초기시는 자연보다는 인간을, 그 속에서도 선보다는 악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선택함으로써 자연과 선의 세계를 주된 주제와 소재로 다루었던 우리의 전통 시가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되었다. 이 시는 원초적 생명력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배암'을 통해 소위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초기시 세계의 문을 연 작품이며, {화사집}은, '보들레르'의 퇴폐적 관능미와 저항 정신이 미당의 토속적 원생주의(原生主義)와 결합됨으로써 탄생한, 한국시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미적(美的) 세계의 확대와 구축이었다.

먼저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가 되는 '화사'는 꽃뱀을 뜻한다. 흔히 뱀은 그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생김새로 인해 '악(惡)'을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여기에 '꽃'이 결합된 꽃뱀이므로 뱀의 일반적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화사'는 표면적으로는 꽃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존재, 모순의 존재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유혹의 뱀'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뱀을 원시적 생명의 대상 소재로 하여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원초적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추구하고 있으며, 때묻지 않은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다.

1연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배암'은 인간의 증오의 대상으로 태어난 슬픔 때문에 징그러운 몸뚱아리를 갖고 있다는 뱀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사향 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풀섶길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배암'을 '징그러운 몸뚱아리'로 인식하는 데서 '화사'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2연은 징그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율배반의 '배암'의 모습을 '꽃대님'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님'은 한복 바지를 입은 뒤, 바짓가랑이 끝을 접어서 졸라매는 끈을 뜻한다. 뱀의 길이와 비슷할 뿐 아니라, 우리와 친숙한 소재이므로 화사를 '꽃대님 같다'로 표현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3연에서 '달변의 혓바닥이 /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변화한다.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은 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다만 '날름거리는 아가리'뿐이다. 옛날의 달변과 지금의 실어(失語)로 대비되는 '배암'의 슬픈 운명을 보며 화자는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라며 뱀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존재의 원죄적 모순성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저주와 증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라는 하나의 시행으로, '물어뜯어'라며 부추기던 시행과 관련되어 더욱 심한 저주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다. 5연은 원죄적 숙명을 극복하려는 운명과의 대결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라는 표현은 화자의 공격적 행위를 의미하지만, 화자는 곧바로 뱀과의 대립에서 오는 긴장을 풀며, 뱀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옮기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돌을 던지며 뱀을 뒤쫓는 화자의 행위는 뱀에 의해서 우리가 원죄를 얻게 된 데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석유 먹은 듯' 불타는 '가쁜 숨결'로 인한 것임을 밝히며 그간의 저주와 증오를 완화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가쁜 숨결'이란 뱀을 뒤쫓는 데서 오는 숨가쁨이 아니라, 관능적인 숨가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화자에게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의식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관능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석유 먹은 듯'의 반복과 생략 부호의 반복은 바로 '가쁜 숨결'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표현이다. 4연의 '대가리'는 남성의 성기를 충동적으로 느낀 뱀의 원형적 심상으로, 5연의 '석유 - 가쁜 숨결'로 이어져 8연의 '순네'와 연결되고 '스물 난 색시'의 관능으로 확대된다.

6연은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으로 나타난 뱀을 몸에 두르고 싶다는 소유욕을 말하고 있으며, 7연에서는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클레오파트라의 고운 입술로 나타난 뱀의 입술이 화자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관능적 욕망을 보여 주고 있다. 8연은 관능과 생명력이 고조된 연으로 스무 살 '순네'의 고운 입술을 뱀의 입술로 인식하는 화자는 마침내 '순네'가 뱀이 되어 자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욕망에서 오는 악마적 전율과 예찬을 통해 서구적 발상과 토속적 사고의 융합을 교묘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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