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 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라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예찬적, 여성적

특성

①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시상을 전개함.

②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시적 화자의 정서를 형상화함.

③ 의인화 기법을 활용하여 대상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함.

④ 대상에 대한 예찬적 태도와 대상에서 느낀 감흥을 진솔하게 표현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 '흙'을 '그'라고 불러 인격을 부여하고 '부럽다'는 말을 통해 '흙'이 지닌 속성에 대해 예찬하고자 함.

*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 흙을 직접 불러보라고 독자에게 명령하며, 화자가 흙의 이름을 부러워하는 이유에 대해 독자와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함.(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일종의 언어유희 : 흙의 이름과 울음 소리)

*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 '눈물'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로 전이하여 형상화함.(공감각적 표현)

*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 또한 귀의처인 것을

   → 흙의 '모성성(생명을 보듬어 포용하고 사랑하는 태도)'을 형상화함.

* 달덩이 → '도자기'를 뜻하며, 흙이 만들어낸 생명체①(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 그의 가슴 → 땅(논과 밭)

* 한 가마의 곡식 → 흙이 만들어낸 생명체②

* 눈물샘 저 깊은 곳 → 감흥의 원천

*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

   → 흙을 통해 화자가 느끼는 감흥을 청각적 소재로 표현함.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성 + 자기희생의 모성'

 

제재 : 흙

주제흙의 모성성을 예찬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흙이 가진 것 중 가장 부러운, 그의 이름

◆ 2연 :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겸손한 흙의 속성

◆ 3연 : 흙을 통해 느껴지는 감흥(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성 + 자기희생의 모성)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흙의 이름이라고 드러내며 흙에 대한 예찬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흙 흙 흙'하고 흙을 부르면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 오며,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 하며 흙에 대한 감흥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화자는 도공이 흙으로 달덩이를 낳고 농부가 흙에 씨앗을 뿌려 한 가마의 곡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바탕으로 '생명의 태반'이며 '귀의처'인 흙의 속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모성성' 역시 시인이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을 주로 작품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하여 해석할 수 있다.

 

◆ 사랑과 포용의 정신이 담겨 있는 문정희의 시 세계

남성성과 구별되는 여성성의 본질적 특성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따른 체험일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싸안는 포용과 사랑의 태도이다. 이러한 사랑과 포용의 정신은 생태학적 정신이자 서정시의 정신이다. 서정시의 특성으로 곧잘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일컫는데, 이러한 동일성 지향의 인간적 형식이란 곧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 점에서 서정성과 여성성, 그리고 생태학적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관련된다. 즉, 살아 있는 생명을 돌보고 보살피면서 어느 하나도 상처받지 않게 마음 쓰며, 상처받은 것은 깊이 위로하고 품속으로 거두어들이려는 태도로서 여성성(또는 모성성)은 바로 생명 가진 존재들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로 나타나는 생태계의 정신이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성의 발로는 생명의 중요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생태학적 모티프로, 그리고 서정성의 새로운 의미로 기능한다. 이와 같은 생태 여성시의 양상은 사실 많은 여성시에 두루 나타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의 성취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역시 문정희의 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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