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준

                                                                              -백 석-

                                                       

 

 

 

그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그 따사하고 살틀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당신은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쓸쓸한 나들이를 단기려 온 것이다.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당신이 그 긴 허리를 굽히고 뒷짐을 지고 지치운 다리로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를 지날 때든가

추운 겨울밤 병들어 누운 가난한 동무의 머리맡에 앉어

말없이 무릎 우 어린 고양이의 등만 쓰다듬는 때든가

당신의 그 고요한 가슴 안에 온순한 눈가에

당신네 나라의 맑은 한울이 떠오를 것이고

당신의 그 푸른 이마에 삐여진 어깻죽지에

당신네 나라의 따사한 바람결이 스치고 갈 것이다.

 

높은 산도 높은 꼭다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詩人)은 안다.

'도스토이엡흐스키'며 '죠이쓰'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모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안에 굴어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안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 냥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그 멀은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든다고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독판을 당기는구려.

 

 

 

 

                          -<조광>(1940)-

 

해           설

[개관 정리]

특성

① 대상을 향한 예찬적 태도

② 평안도 사투리를 통해 토속적인 분위기를 형상화함.

③ 동일한 통사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주제를 강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허준 → 평북 출신의 소설가로 백석의 절친한 친구임.

* 눈물의 나라, 볕살의 나라 → 대구적 표현. 시적 대상에 긍정적 인상을 부여함.

* 당신 → 허준. 예찬의 대상

* 이 세상 → 허준이 나들이를 온 공간.  화자가 처한 공간

*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 → '이 세상'의 이미지

*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 대구.  '당신네 나라'의 아름다움을 강조함.

*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 '당신'에 대한 예찬적 태도

* 목이 긴 시인 → 백석 자신

* 죠이쓰 → 제임스 조이스.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임.

* 게사니 → '거위'의 방언

 

주제평화롭고 따스한 인정이 있는 세상 염원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맑은 눈물과 따사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허준

◆ 2연 :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허준

◆ 3연 : 부정적 현실에도 온순하고 맑은 마음을 지닌 허준

◆ 4연 : 화자가 바라는 평화로운 세계의 풍속과 인정과 말

◆ 5연 : 재능을 갖추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허준

◆ 6연 :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 허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절친한 벗인 소설가 허준을 매개로 하여 시인 백석이 마음 속에 염원하는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화자는 허준을 '맑고 거룩한 눈물'과 '따사하고 살틀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존재, 즉 순결하고 어진 성품과 온화하고 평화로운 성격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하고 있다. 허준과 화자가 있는 현실은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가 있는 부정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허준은 이 부정적 현실 속에서도 그 순수하고 온화한 마음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허준을 보며 '당신네 나라'를 동경한다. 그곳은 '맑은 한울(하늘)'과 '따사한 바람결'이 있는 곳이고, 풍속과 인정과 말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다. 평이하고 진솔한 어조로 되어 있고, 도입과 결말이 분명한 의미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가지런한 형식미를 느끼게 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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